번역투의 유혹 : 일본어가 우리말을 잡아먹었다고?
저: 오경순
출판사: 이학사
출판일: 2010년 07월
책을 읽은 후, 내가 그동안 썼던 글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문장 하나 하나를 읽어 가면서 자신이 쓴 글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느낌을 참기 어려웠다. 그동안 잘도 우리 근대가 일본 번역물을 통해서 수입되었고 따라서 영향이 많았다고 말하면서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엉망인 글들을 썼다. 부끄러웠다. 마치 그러한 번역투 문장이 굉장히 세련되고 지적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이미 익숙해진 상태이므로 얼마나 잘못된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부끄러운 상태였고 앞으로 글을 쓸 일이 있다면 반드시 조심하자는 다짐은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얼마나 한글 실력이 엉망인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오경순은 서문에서 "올바른 문화로 이어지는 올바른 번역을 위한 첫 단계로 나는 번역투와 가독성의 문제에 주목하였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을 기술하는데 이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 출판 시장에서 번역서는 30%에 가까고 이러한 번역서 비율 중 일본어 텍스트가 34%로 가장 많다. 한국어와 일본어 상호 유사성이 매우 높지만 그로 인한 오역도 많다. 번역문의 영향은 우리 사회 지식인들이 쓰는 글에 고루 퍼져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번역투의 전반적인 흐름을 서술하고 나아가 대안 번역을 제시하는 실용적 연구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우리말에 남아 있는 부자연스러운 외국어의 흔적을 번역학에서는 '번역투'라고 부른다. 어떤 글에서 원문이 아닌 번역문이라는 흔적이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경우, 그러한 특성을 바로 번역투라고 한다. 오경순은 "원문 구조에 치우친 직역의 결과로 번역문에 나타나는 상투적이고 어색한 외국어식 표현"으로 정의한다. 번역투는 목표 언어의 부족한 어휘 체계를 보완, 목표 언어의 문제 다양화 따위의 순기능과 목표 텍스트의 질 저하, 가독성 및 이해력 저하, 목표 언어의 다양한 표현 기회 저해, 목표 언어 어휘 체계 구조 왜곡 및 비속화, 목표 언어의 정상적인 발달 저해, 언어 사대주의 심화 따위의 역기능을 지닌다.좋은 번역은 원문의 내용과 형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번역하는 충실성과 우리말 구사 수준, 즉 가독성을 도잇에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말에 대한 일본어의 언어간섭interference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그 유형 또한 다양하며 우리말의 모든 층위에 걸쳐 나타난다. 없어도 그만인 ~적的, 망년회와 같은 일본식 한자어, 오뎅, 가마니, 우와기와 같은 음역 차용어, 우동과 같은 일본식 외래어를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일본어 の의 영향인 '~의', 일본 문인이 번역한 'He'를 かれ 'She'를 かのじょ로 번역하면서 널리 사용된 3인칭 대명사 따위의 과잉 사용도 번역투이다. 널리 쓰이는 표현 '~에 대해서', '~에 관하여', '~에 있어서', '~에 의하여', '~에 응하여', '~에게 있어서'도 일본식 후치사의 영향이다. 이러한 표현은 간결하게 정리하여 사용해야 문장이 간결하다.
오경순은 이러한 예를 설명하면서 번역자를 위해 외래어 표기법과 인용부호 따위를 자세히 설명한다. 아울러 저자가 수행한 번역 테스트 예시를 통해서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대안 번역의 예를 잘 설명한다. 본서가 번역가 혹은 번역 관련 일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나와 같은 일반인들에게도 인지하지 않고 사용하는 표현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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