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간 한국전쟁 :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
저: 박찬승
출판사: 돌베개
출판일: 2010년 06월
이번 주말에는 한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한꺼번에 읽고 있다. 나에게 책을 읽은 후에 느낌을 정리하거나 혹은 내용을 요약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나름대로의 큰 즐거움이다.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휴식같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머니에게 은퇴를 하게 된다면, 한적한 곳에 있는 조용한 도서관으로 매일 찾아가, 있는 듯 없는 듯 풍경처럼 어우러져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이 너무 오래 산다고, 그래서 적어도 70살까지는 계속 일해야 된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한가하게 책을 읽을 여유는 정말 훗날로 미뤄둬야 될런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런 즐거움이라도 나쁘지 않다. 묻고 싶다. 당신은 책을 읽으면서 어떤 감정을 주로 느끼는 지. 나에게는 즐거움, 유쾌함, 장중함, 우울함, 아련함 그리고 깊은 슬픔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 책처럼 안타까운 슬픔을 느끼는 책도 흔하지 않다. 그것이 특히나 소설과 에세이 같은 것이 아니라 역사서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슬픈 비극인 한국전쟁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씌여진 책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읽었던 책들도 대부분은 대학시절에 과 소모임을 하면서 읽었던 것들이었다. 유쾌하지 않은 내용들이 많았고, 그래서 나의 관심은 현대사에 좀처럼 향하고 있지 않은 지도 모른다. 오히려 고대사의 신화적 상상력이 더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한국전쟁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한다면, 민간인 학살일 것이다. 학살은 한국, 북한을 가리지 않고 자행되었다.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특히 지방의 촌공동체에서 일어났던 이러한 학살의 양상과 원인을 심도있게 다룬 책이다. 발로 뛰면서 각 지역의 당사자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한 저자의 노력에 감탄할 뿐이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발생한 무수히 많은 민간인 학살의 양상을 살펴보면, 그것이 국가권력의 촌 공동체 침투라는 배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같은 촌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를 증오하고 결국에는 비극적 결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저자와 같이 가질 수 밖에 없다. 어떠한 갈등 요인이 이들을 근본적으로 좌, 우로 나누었던 것일까?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념과 계급이라는 기준으로 이를 설명하고자 했지만, 이런 단순한 논리로 지역마다 달랐던 촌 공동체 내부의 갈등요인을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촌 공동체 내에서의 학살이 이루어졌던 예를 통해서 그러한 제 원인들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박찬승은 전쟁 이전의 한국 사회가 갈등요소가 대단히 많은 사회였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갈등이 현명하게 해결되지 못했고 그 결과 반복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고 주장한다. 공식적으로는 철폐되었으나 지주-소작제라는 토지소유관계를 중심으로 전쟁 전까지 여전히 관습적으로 유지된 신분/계급의 갈등이 이념과 전쟁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증폭된 것이다. 한편, 친족 간, 친족 내부의 갈등이나 마을 간, 마을 내부의 갈등으로 인한 충돌도 적지 않았고, 지파 내부에서의 일가주의만 힘을 발휘할 뿐이었다. 집안과 가문 그리고 인척관계가 국가나 이념보다도 더 중요했다는 사례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다른 배경은 종교와 이념간의 갈등이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해방 이후 친이승만 노선을 걸어왔고 실제 우익단체에 참여했다는 점을 들면 이해하기 쉽다.
한편 이러한 촌 공동체 내에서의 좌, 우는 마을 지도자들의 영향력에 이끌리는 경우가 많았다. 좌파 지식인들은 교육수준이 비교적 낮았던 촌민들에 대한 권위가 컸고, 또 지주-소작인의 봉건적 관계가 남은 불평등한 현실이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적 지식인의 정당성을 확인해주었다. 우파는 면장, 경찰 등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해서 지도자로 부상하거나, 지주층은 자신의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해서 지도자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지도자의 영향이 총 공동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 지는 많은 예에서 증명된다. 또 학살의 배후에는 남북한의 국가권력이 있다. 남한은 경찰, 우익청년단 등으로, 북한은 인민위원회, 각종 연맹, 치안대 등으로 촌 내부에 침투했다. 이로 인해 촌민들은 좌우로 갈리어 서로를 적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전쟁 이후, 촌 공동체는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받았다. 화해를 위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서먹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금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참담한 민간인 학살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박찬승이 말한 대로 좌, 우를 막론하고 모두가 시대의 희생자들이었다. 이제 그 상처를 보듬어야 될 때가 된 것 같다.
한번 쯤 꼭 읽어 보기를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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