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아시아의 발칸, 만주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

soocut28 2025. 5. 11. 06:30

아시아의 발칸, 만주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
공저: 백준기,최정수,정상수

출판사: 동북아역사재단

출판일: 2007년 12월

 

지금 중국에서는 만주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동북 3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만주는 중국분할이라는 제국주의 열강의 요구에 이용된 측면이 있고, 중국과는 별개의 지역으로 쟁점화될 수 있다는 관점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있어서 만주라는 지명과 그것이 뜻하는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지는 밀접한 역사적 의미를 함께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만주와 한반도 문제는 'Great Game'이라 흔히 이야기를 하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이라는 시대상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서 우리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정세 속에서 각 강대국들의 정책을 역사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역사학의 중요한 의미라는 것도 그런 것에서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19세기 만주와 조선은 유럽의 발칸반도와 매우 유사한 상황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남하하려는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해양세력인 영국의 대결구조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문제가 발생한 것은 발칸문제, 중앙아시아문제, 그리고 만주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동아시아 문제의 핵심은 조선보다는 만주에 있었다. 만주는 열강의 이해 다툼이 얽혀있는 혼미한 상태였던 발칸과 매우 유사하지만, 오스만제국과 달리 청제국이 만주지역에 대한 장악력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과 민족문제가 그다지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유럽열강 중에서 만주문제와의 이해관계가 가장 근본적인 국가는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유럽국가였지만 제국으로서의 운명은 동방에서 결정되었다. 19세기 중반 크림전쟁에서의 대패로 대유럽정책의 한계를 경험한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와 극동정책을 본격화하여 유라시아 제국으로의 영토적 완결성과 세력권을 완성했다. 백준기는 20세기 말 서방정책의 전반적 딜레마를 상쇄하고 강대국(제국)으로 부활을 위해 선택한 것이 동방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즉, 동방정책은 미국견제와 다극체제 형성을 목표로 중국, 인도와의 협력 강화를 우선순위로 하여 북한 등과의 관계복원을 그 내용으로 하여 전략적 균형(strategic equilibrium)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러시아의 동방정책은 진행형이다.

한편 만주문제에 있어서 모호했던 것은 미국이다. 최정수는 기존의 연구가 문호개방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이해관계는 경제적 목적을 주로 하는 것이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의 문호개방은 먼로 독트린이라는 세계전략과 연결하여 이해해야 한다. 먼로독트린(Monroe Doctrine)의 원칙이 적용되는 지역이 서반구(Western Hemisphere)인데, 미국은 칼 슈미트가 언급한 자기 고립선으로서의 해양국경(Ocean Frontier)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태평양을 자신의 호수로 하는 미국에 있어서 만주는 국경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또한 멀로독트린이 약한 국가(weak state) 혹은 실패한 국가(failed state)가 미국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개념이 있으므로 미국이 중국의 유지를 주장한 이유도 설명될 수 있다.

정상수는 독일이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중재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와 영국의 대립구조를 이용한다는 키싱엔 강령(Kissinger Diktat, 1877)에 입각한 등거리 정책을 수행했다. 이른바 삼국간섭은 당시 군사협정을 넘어서 국가조약으로 발전했던 러프동맹의 결속력을 시험해보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력과 재정력의 지원이 없는 단순한 외교정책을 통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세력권 확대 시도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영광스러운 고립(splendid isolation) 노선을 고수하던 영국의 전통적 동방정책은 오스만제국을 현상유지하고 인도로의 교통로 확보 또한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제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기조는 변화되어야만 했다. 이미 보어전쟁과 만주문제를 동시에 해결할만한 여력이 없었던 영국은 영일동맹을 맺게 된다. 영국은 사실상 만주문제에 개입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도의 안전보장이었다. 영일동맹은 제국주의 시대의 열강의 정치, 군사, 외교를 상징하는 동맹이었다. 한국과 만주는 이러한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운명으로 전락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19세기말 20세기초에 전개되었던 만주문제는 오늘날의 한반도의 상황과 비슷해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정책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유사성에 눈을 뜰 것이다. 물론 그 당사자들이 바꿔긴 했다고 하더라도. 따라서, 본서를 통한 과거의 모습을 고찰함으로써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