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 우리 근대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저: 최예선,정구원
출판사: 모요사
출판일: 2010년 05월
할아버지가 남긴 낡은 옛 지폐 5장으로부터, 무척이나 낡은 것 그래서 잊어 버리고 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찾고자 했던 호기심.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 된 조금 길었던 한 청춘남녀의 여행 흔적의 차분한 글을 다양한 사진과 함께 조용히 읽어 가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미술사를 전공한 최예선 씨와 건축을 전공한 남편인 정구원씨의 이 책은 근대라는 우리에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근대에 대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망각을 구조화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그 개념과 진행이 타인에 의해 강제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근대라는 그 시대는 새로운 것들이 섞이며 우리들과 연결되고 또 합쳐져 가는 연속상의 것이었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단절된 것처럼 느껴진다.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는 느낌이 드는 거북스러운 찝찝함이랄까. 하지만 기묘하게 섞여가는 그 시대의 단상을 실제로 느껴 본다면 어떨까. 정확한 것은 그 시대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존재했고,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아니 우리의 현대는 그곳과 바로 맞닿아 있고 연결 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시간이 멈춘 곳으로 떠나는 청춘남녀의 뒤를 나도 살며시 따라가본다. 1년여의 기간 동안 전국의 곳곳을 다니면서, 찾아가고 사진을 남기고 하나하나의 사연을 적어 가는 이 책은 에세이이면서, 아픔이 가득한 근대의 모습을 조용히 조망해본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눈을 감으면, 어렴풋이 그곳에 있음을 상상해보고, 또 그 건물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창경궁 대온실과 아름다운 호미곳 등대의 지치고 외로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새겨진 황실의 상징, 오얏나무 문양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마치 근대 개항기 이후, 외세의 영향으로 인해 점차 쇠락하고 있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모습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알고 있으며 신경이나 쓸까. 그러나 그 시대 벨기에 영사관과 일본 은행들의 견고한 건물들을 보니 그 느낌이 사뭇 대조적이다. 어쩌면 건축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객관적인 시각보다는 감정이 더 앞서는 것일 지도 모른다. 저자들이 찾아나선 그 길에서 만난 아직까지 그 시대를 알려주는 대다수의 건물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지점 건물, 일본은행 지점, 적산가옥, 일본인 지주들의 저택이다. 물론 홍난파 저택, 진천 덕산양조장과 같은 옛 건물들을 만날 수도 있지만.
이런 건물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될까? 종종 근대 건축물의 유래를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와 마주치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우리 인생과 뭉쳐 가야 될 것이다. 복원과 지정문화재를 통한 보호만이 아니라, 그 건축물들이 우리들의 현재 삶과도 연결되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저자들이 말한 것처럼, 맹목적인 복원과 부실한 박물관 추진이 아니라, 그 건물이 사람들에게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망각하고자 했고 단절하고자 했던 근대의 모습과 더 친숙해질 것이다. 물론 부정한 것을 긍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우리들의 현재를 가져왔던 것, 그 자체로 보자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지 않을까.
시간이 생기면, 저자들이 친절하게 제시한 길들을 따라서 나도 몇몇 곳들을 방문해보고 싶어 졌다. 그곳에서 나도 많은 이야기를 찾아 보고, 느끼고 또 사진도 찍어 볼 것이다. 낯선 이국의 풍경처럼 느껴지는 그 건물들의 체취를 직접 살펴볼 것이다.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의 물레 (0) | 2025.05.10 |
---|---|
온 가족이 행복한 일터 (0) | 2025.05.10 |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가야와 임나 (0) | 2025.05.10 |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 (0) | 2025.05.10 |
기후, 에너지 그리고 녹색 이야기 (0) | 2025.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