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
저자: 이태하
출판사: 책세상
출판일: 2000년 09월
종교는 언제나 나에게는 흥미로운 주제였고, 관심의 대상이었다. 내 가족이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에 종교를 거부했고, 신을 거부했다.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의구심과 불신이 아마도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은 우리들 한명 한명이 대우주의 일원으로 영겁의 시간 속에서 태어나, 사라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이 바라는 내세의 삶이라든지 혹은 부활, 윤회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 지루한 이야기지만, 나는 인간은 죽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말 그대로 영원한 안식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잃고 사라지는 존재라고 믿는다.
내가 신과 종교를 불신하고 믿지 않는 것은 나의 선택이고, 가치관이다 .하지만 나는 종교란 정량적으로 평할 수 없는 인간의 의식과 연결된 하나의 현상으로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흥미로운 연구의 주제라고는 생각한다. 종교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상 종교가 인간의 삶과 행동양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노라면,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나의 이런 생각은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관심의 한 축에는 광신주의와 도구로 전락한 종교로 인해서 하나 뿐인 인생을 영원히 망쳐 버린 가련한 개인들에 대한 동정심도 가득하다.
지루할 것 같은 이태하 교수의 본서를 선택해서 읽은 것도, 유신론자 입장에서의 합리적인 종교철학에 대한 논의를 개설적으로 서술한 책을 독서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철학이란 일상적인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이며, 종교란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기에 종교에 대한 우리의 철학적 성찰은 곧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이라고. 종교는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형이상학에서 이해할 대상이 아니며, 가슴으로 느끼고 공감해야될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편견, 선입견을 벗어나 특정 종교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담론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대화의 첫걸음이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밝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과학이 통제적 믿음이 되어야 하고, 인간의 삶과 구원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앙이 통제적 믿음을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신앙과 과학의 영역은 확고하게 구분되야 한다. 과학적인 언어의 목적이 전형적으로 예측과 통제인 반면에 신학은 숭배나 위로를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다라서 종교적 언어게임에서 ‘신이 존재한다’와 같은 종교적 신념의 명제처럼 증명을 요구하는 명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을 규제하는 일종의 규제적 신념을 표현하고 있는 명제인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보완적이라기보다는 상보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죄의식, 위험, 감사와 같은 조건들이 바로 죄를 사하며 위험에서 구원하고 그로 인해 감사와 찬양을 받을만한 하느님에 대한 유신론적인 신념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신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준다는 느낌은 바로 신자들이 신의 존재를 믿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이 세계의 실재성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지라도, 이것이 대체 어떤 의미에서 정당한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신념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이 곧 그것을 수용해야 할 이유도 없고, 수용해선 안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합리성을 의미하면,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합리적이란느 점에서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이유를 찾아볼 수는 없다. 종교의 확실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분명한 결론도 내릴 수 없다.
종교에서 이야기를 하는 기적에 대해서 살펴보자. ‘기적이란 과연 참된 것인가?’라는 물음은 자연과학이나 역사적 탐구의 한계를 넘어 오직 신앙의 결단을 통해서만 답변이 가능한 것이다. 모든 종교의 경전에서 기술되고 있는 기적의 신앙을 부정한다는 것은 세계와 인생을 해석하는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라서 기적은 신앙인의 눈 밖에서는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종교와 도덕은 또 어떤가. 윤리적인 것은 그것이 신의 선택이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것이기에 신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선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따라서 도덕과 종교는 논리적으로 독립적 관계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종교의 실천은 도덕이, 도덕의 토대는 종교가 되는 종교와 도덕의 상보성을 파악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저자는 기독교를 비롯한 한국종교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지역감정, 남북문제 등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많으며, 이를 위해서 범교파적인 차원의 의견 통일을 이루고, 그것에 기초하여 범교단적이고, 범종교적인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이것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도덕화를 앞당길 것으로 예상한다.
종교철학에 있어서의 많은 의문과 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개설적으로 서술한 이 책에서, 사실 어떠한 명확한 결론도 있지는 않다. 다만, 저자는 유신론자의 입장에서 역사상 신의 존재라든지 종교의 타당성을 주장했던 많은 사람들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한다. 즉, 그다지 새로운 시각은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저자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과학과 종교, 그리고 도덕과 종교는 보완적이라기 보다는 상보적이라는 것. 나름의 다른 영역을 구축하고 있으므로, 과학으로 혹은 도덕을 종교를 판단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입장과 다름 아니다. 따라서 무엇인가 명확한 해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적 믿음, 종교 그 자체와 관련된 여러 철학적 질문과 논쟁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개설서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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