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제국
PEOPLES AND EMPIRES
저자: 안토니 파그덴
출판사: 을유문화사
출판일: 2003년 04월
제국이라는 의미와 개념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한다면, 깊은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단편적인 이미지들만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대학시절 강의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토론을 했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지만, 먼 과거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만 하다. 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마도 우리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과 경험 때문일 지도 모른다. 억압적 제국주의의 희생을 강요받은 우리에게 제국이 어떠한 좋은 의미로 다가올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제국을 단순히 근대의 제국주의와만 연결해서 생각한다면, 오류에 빠질 것이다. 제국이란 그렇다면 과연 정확히 어떤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제국은 역사상 민족과 문명을 아우르는 일종의 도구였다. 제국이라는 용어가 은유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남용되는 경향도 있다. 우리가 제국을 어떻게 정의하든 지, 제국은 언제나 서로에게 관련이 없는 민족들에게 안정성을 부과하는 방식이었고, 한 민족이 수많은 다른 민족을 제한하는 일종의 억압방식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제국은 지리적 확장을 추구했으므로, 그 과정에서 여러 민족을 포용해야만 했다. 따라서 제국은 서서히 세계적인 사회로 변모했다.
서구문명에서의 최초의 제국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으로 비교적 짧은 시기 동안에 존재했지만 (기원전 336-323년), 고대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몇 세기에 걸쳐 제국 창시자의 원형으로 추앙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미지가 서양세계에서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는데, 페르시아 군주들의 통치자 모델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동양과 서양을 통합하고, 아시아와 유럽, 순수 그리스인과 야만인을 결합하기를 희구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뒤를 이은 로마제국은 문명화라고 불리게 되는 생활을 제공하고, 서구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시민권을 부여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스코틀랜드에 이르기까지 비로마 출신의 지방관들이 자신을 로마와 동일시할 수 있었던 근거는 로마의 도로나 심지어는 팍스 로마나도 아니었다. 그 근거는 바로 사치와 풍요에 대한 유혹과 권력이라는 덫이었다. 로마의 제국주의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그 땅과 재산을 취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정복보다는 후원에 중점을 두는 관대한 통치형식이었으며, 타인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 최고 목적이었다. 로마인이 만들어낸 최고의 생각은 세계-국가와 세계의 보편법칙, 동포애 그리고 인간의 평등성이었다.
17세기경 포르투갈 제국은 서아프리카에서 인도와 중국 남부에 이르는 모든 길을 꿰뚷었고, 카레다 다 인도의 무장상선은 매년 엄청난 재산을 유럽으로 들여왔다. 한편으로는 유럽제국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팽창을 중단할 때까지 늘 기독교가 옆에 있었다. 정복자와 정착자, 무역상들이 가는 곳이면 선교사들도 바로 그 뒤를 따라갔다. 유럽인들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아메리카의 많은 지역을 차지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영국적인 발판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후, 새로운 제국은 군사력보다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워져야 했다. 이런 개념은 1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정서에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무역은 제국의 의미와 제국의 방향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는 방법이었다. 영국제국은 이른바 미국전쟁으로 소위 제1대영제국과 제2대영제국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제2제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태평양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한 이 제국은 상업적으로 우호적이며 자유적인 제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후에 고대 세계에는 없었던 인종주의가 첨가되면서 유럽 해외제국은 물론 제국 자체까지도 종언을 고하는 발단이 된다.
과거 모든 제국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패권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유럽 해외 제국들은 1947년부터 1960년 후반에 모두 없어졌다. 근대 유럽제국은 빠르게 출현한 만큼이나 빠르게 몰락해고, 그 원인도 대개 비슷했다. 대부분의 근대 제국주의의 원동력이 되었던 사회개조력, 즉 민족주의가 식민지 이후의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으로 작용했다. 제국은 토착 엘리트 계층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근대화 이상과 국가의 자존에 대한 서구의 개념까지 불어넣었다. 종속 민족들의 민족주의는 한 때 광대했던 제국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탈식민지화 과정은 괴로운 기억과 증오를 낳았다.
이제 제국은 존재하지 않지만, 유럽을 지탱해온 관습은 이제 다시 시장과 국제 자금업계 그리고 비정부단체의 형태로 슬그머니 들어오고 있다. 이런 단체들이 과거의 군대와 행정가, 사제를 대신한다. 이전 제국의 유산은 분명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식민지를 내주고 제도를 해체하고 이념을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신조, 확신, 생활양식은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본서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았다. 짧은 책에서 2천년의 역사에 해당하는 내용을 축약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한다면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없다면 어려울 수도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또 한편으로는 아제국이 억압방식이기는 했으나, 여러 민족들에게 안정성을 제공해주고, 아울러 세계적인 사회로 이행하는 도구였다는 인식이다. 생각해보면, 제국이라는 이름의 거대국가들은 비슷해보이지만, 단순히 지리적확장을 추구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한 개념으로 안렉산드로서의 제국부터 근대 유럽제국까지를 하나로 묶는 것은 무리다.
제국이 민족을 아울러 세계사회로 이행하는 도구였다는 관점은 특히 서구 제국주의 약탈적 경향과 오류 조차도 긍정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비록 저자가 노예제도로 대표되는 인종주의의 해악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했음에도 여전히 이러한 관점은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제국의 물리적 형태는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서구세계의 약탈적 관계가 주종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쓰라린 현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Anthony Robin Dermer Pagden, the son of John Brian Dermer Pagden (died 1979) and Joan Mary Pagden (died 1997) is a distinguished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nd history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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