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고대 : 근대 국민 국가의 동아시아 이야기
저자: 이성시
출판사: 삼인
출판일: 2001년 10월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고대사는 어떤 로망을 가져다주는 대상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뛰어넘는 뭔가 다른 매력적인 신화적 사건과 인물들로 고대사가 구성되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아마 우리는 고대사를 다룬 텔레비젼 사극에 열중하는 지도 모른다. 사실과 허무가 뒤섞인 그래서 종국에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고대사를 완전히 복원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불신감마저 든다. '만들어진 고대'의 제목은 마치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연상케 한다. 神이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망상처럼 고대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도 그런 망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책의 제목을 이렇게 한 것일까?
저자, 이성시는 재일교포2세 출신의 와세다대학 교수로 한국 고대사를 전공하고 있다. 그의 중간자적 입장은 그의 글에서도 강하게 드러나는 듯 느껴지는데, 최대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이 그의 글 여기저기에 투영되어 있다. 본서가 동아시아 고대사를 바라보는 대전제는 근대 민족국가 이론이 (본서에서는 근대 국민 국가로 지칭되는) 현재 우리들의 고대사에 대한 시야를 제공했으며,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고대사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이러한 근대의 산물인 민족으로 인해서, 그 모습이 변형되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말 그대로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고대는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말이다.
한국 고대사의 연구는 일본 식민사관에 대항하여, 고대사에서 한민족의 일본에 대한 우월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이러한 구조는 말 그대로 '민족'에 기인했다. 우리는 광개토대왕비를 둘러싼 한국, 중국, 일본의 입장차를 인지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한반도 남부의 경영설과 그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반론제기와 논쟁은 광개토대왕비를 둘러싸고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양측의 연구자들의 논거의 대전제는 역시 '민족' 혹은 '민족국가'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과연 민족의 개념이 언제 생겼는가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비교적 근대인 100여년 전에 형성된 이념이고, 따라서 우리는 민족이라는 관념이 당시 고대에는 있을 수 없다는 아주 간단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광개토대왕비를 둘러싼 논쟁에서 부각된 몇줄의 기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저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광개토대왕비가 그 당시 고구려에서 어떠한 의미로 세워졌는가라는 점이다. 즉, 그 전체적인 내용과 당시의 기능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 이름이나 형태, 그리고 부가적인 일본과 한국의 논쟁만을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비는 5부 연합의 고구려에서의 왕의 권위를 높이고 더불어 왕묘를 지키는 수묘인에 대한 관리를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광개토대왕비에 보이는 倭에 대한 기술은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수사적 장치로 규정한다.
광개토대왕비와 마찬가지로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에게 있어서의 발해사는 또다른 고대사의 핫이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발해를 지배층이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이 말갈인이라는 논리를 들어, 신라와 발해를 묶어 남북국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발해를 당의 지방정권으로, 러시아는 말갈인의 최초의 국가로 판단한다. 발해에 대해서는 말갈인의 역할이 매우 축소되어 평가되었으며,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말갈인에 대한 평가는 다시 이루어져야 된다고 본다. 분명한 것은 발해의 지배층에는 고구려인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말갈인에 대한 통치방식등을 비정해보면 고구려와 발해의 유사성이 발견되는 것이다.
근대 민족국가라는 비교적 현대에 생긴 관념과 시야를 가지고, 고대사를 바라볼 수록 우리는 온전한 고대의 모습의 복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보다 고대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 당시의 고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보다 넓고 깊게 고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일정한 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니시지마의 '동아시아론'의 허구성을 생각해본다면, 한편으로는 현재 일본에서 주장하는 동아시아공동체의 실체라든지 효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깊은 의구심과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 역시 근대 민족국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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