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제자들에게 정치를 묻다 : 우리 시대에 다시 듣는 공자의 정치철학
저자: 김성희
출판사: 프로네시스
출판일: 2008년 06월
다른 책들을 읽고 싶어서 찾아간 서점에서 발견한 최근 발간된 '공자, 제자들에게 정치를 묻다.'는 우연히 발견해서 읽은 참으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술로 인해서 몸이 약간 피곤했을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흥미롭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그러한 가운데서 주위의 친구들이 당시의 신세대 (라고 하기도 민망해지지만 어쨌든) 주류의 문화활동과는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옛 고전을 읽어갔고, 그 의미에 대해서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깊이가 그다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그들 (나를 포함한) 나름의 의견과 해석들은 지금 와서는 유치해보인다. 그렇지만, 당시에 읽었었던 고전들의 영향들은 아직도 남아있는데, '논어' '맹자' '한비자' '순자' '도덕경' '대학' '중용' 등의 많은 책들의 흔적들이 아직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은 이후에 내가 과연 그 책들에 대해서 과연 제대로 이해하며, 그들이 가진 사상의 넓이와 깊이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나는 피상적으로 그들을 접했고, 잊어버렸다.
우연히 발견한 책을 통해서 만족감과 기쁨을 얻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는 않은 편이었다. 책들의 흥미로운 제목과 혹은 표지에 이끌리기도 하여, 커다란 재미를 느끼지 못한 때가 휠씬 많았지만, 김성희씨의 '공자, 제자들에게 정치를 묻다.'는 다른 사람에게 무척이나 권해주고 싶은 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공자는 정치사상가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으며,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를 바란 인물이었다. 14년간의 정치여행을 통하여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았으나, 결국은 현실정치의 참여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통해서 그가 지향했던 점과 오늘날에 시사하는 점을 찾을 수 있다. 본서는 공자의 14년간의 정치여행에서 자신을 수행한 제자들 중 재여, 자로, 자공, 안회의 4명의 제자들과의 논쟁을 재조명함으로써, 공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들 4명의 제자들은 각자 뚜렷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개성적인 인물이었고, 이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공자의 사상은 더욱 견고하고 뚜렷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공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무엇일까?
공자가 주장하는 천자 중심의 봉건제는 천자에게 독단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제도가 아니라 제후의 나라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 공동체의 체제였다. 이는 복종과 소극적 상호성의 불가침 원칙보다 정치 행위자의 인격과 행위로서 드러나는 적극적인 상호성의 사양원칙을 더 상위에 두는 정치제도였다. 공자의 정치 행위자는 德을 갖춘 사람으로, 덕은 다수의 관계에서 발생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義의 기준을 따를 때 유진된다.
공자의 정치사상은 다수성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행위를 하는 정치 행위자는 반드시 관찰 능력이 요구된다. 이는 정치 영역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됨'을 본다는 것이다. 이는 행위에서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자기를 알아준다. (知己)'와 '다른 사람을 알아야 한다. (知人)'의 개념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앎의 행위는 자신과 동등할 만한 사람을 알아보는 행위이다. 따라서 정치 행위자는 '판단'의 능력을 발휘해야 되며, 이는 평형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다. 중용을 추구하는 정치 행위자는 한편으로 자기 판단이 공적 기준에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판단이 다른 어떤 사건이 아닌 바로 그 사건에 꼭 맞는 판단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공자는 현실정치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자기만이 할 수 없는 일이고, 더불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치 행위자는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사랑해야 하고,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어짊은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공자가 말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1. 宰予
공자와 제자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상호인정과 상호비판이었다. 재여는 공자의 정치사상과 행위에 가장 많이 반대한 제자였다. 논어에서 재여는 공자에게 한번도 좋은 평을 들은 적이 없고, 게으르다는 이유로도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정치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재여의 능력은 특히 엉어부분에서 발휘되었다. 이는 이교적 언어의 구사능력이었는데, 오히려 스승을 실망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재여는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의 행위는 언어에 부합하지 않았다.
재여는 외교 언어의 구사능력은 뛰어났지만, 정치 행위의 문제에서는 공자와 달랐다. 재여는 공자의 삼년상을 반대한다. 정치를 담당하는 군자가 부모의 삼녀낭을 치르느라 자리를 비운 동안에 예약 제도는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 채 폐지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여는 일년상을 옹호했다. 그러나 공자에게 있어서 삼년상은 정치 영역에서 왕 혼자 소유하는 정치권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분배하는 일종의 정치제도였다. 반면에 재여는 상례기간을 1년으로 줄여 군주가 강력하게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무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믿었다.
재여가 군주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옹호했다면, 공자는 義를 바탕으로 한 정치 행위자의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재여는 공자의 주장에 첨예하게 맞섰지만, 이들은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며 견고한 사상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2. 子路
논어에서 재여를 낮잠 자는 인물로 그렸다면, 공자의 또 다른 제자 자로는 '용기를 좋아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자로는 공자와 정치 노선이 달랐지만, 그 누구보다도 공자에게 충성했고, 이로부터 커다란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자와 자로는 충실성(忠)에 대해 견해가 달랐다. 공자는 군주에 대한 충실성은 義의 원칙으로 규정된다고 보았다. 義는 두 정치 행위자인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개념이 된다. 구준에 대한 신하의 태도가 종속적이지 않은 것은 신하가 義에 어긋난 군주의 잘못을 꾸짖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를 깨우치는 신하는 정의에 입각해 있고, 이에 따라 군주와 신하는 상호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상호관계는 물론 義를 매개로 간접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데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자로의 용기를 공자는 인정하지 않았다.
공자는 재능있는 정치가의 핵심이 권력 독점이 아닌 함께 공동체의 문제를 의논하고 해결하는 능력에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자로의 용기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보다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 맡김을 목적으로 했다. 이러한 내어 맡김의 용기는 맹목적인 충성만큼, 끝없는 폭력의 발현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자로는 '군자는 용기를 숭상합니까?'라고 자신있게 질문했다. 이에 공자는 義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군자에게 용기만 있고, 義가 없으면 난을 일으킨다'고 잘라 말했다.
자로의 인격이 보여주는 거친 측면은 그가 시와 음악에 무지했다는 사실이다. 공자에게 시와 음악은 교양인의 문화 활동 이기 이전에, 정치 행위자가 익혀야 할 전문 기술인 동시에 정치 행위의 원형을 추출해낼 수 있는 실마리였다. 詩는 외교 임무를 맡아 다른 나라로 떠나는 기원전 5세기 관리들에게는 반드시 갖처야 할 요건이었다. 음악의 핵심은 연주 그 자체가 아니라 악기들의 합주로서 드러나는 어울림에 있었다. 정치적인 면에서 어울림은 인간의 공동체 사람에서 바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상태를 의미한다. 음악으로부터 추출한 어울림의 정신은 다르게 판단하는 행위자들의 다수성과 공동체의 정의에 기반을 둔다. 음악은 공자에게 다르면서도 동시에 어울릴 수 있는 정치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주였다.
자로는 현실 정치의 적응 능력이라는 기준에서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편에 속했다. 자로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였고, 용기를 좋아했으며, 친구와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나누려 했고, 종교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자로는 공자와 더불어 배울수는 있어도, 더불어 같은 길로 갈수는 없었다. 그는 공자가 강조한 어짊의 적극적인 상호성을 이해못했다.
3. 子貢
자공은 매우 현실적이었는데, 그의 현실성은 자로와는 달랐다. 자공의 실재성은 직업에서 드러난다. 한시외전에 보면 자공은 공자를 만나기 전부터 위나라의 상인이었다. 공자는 돈 잘 버는 제자 자공이 탐탁지 않았다. 공자 시대에 이르러, 자공과 같이 정치에 뜻을 둔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서, 동시에 상업과 같은 비정치적 일에 종사하여 따로 재산을 쌓았다. 공자는 이러한 세태를 개탄했다.
자공은 상업에 뛰어난 소질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에 탁월했다. 자공이 얼마나 말을 잘했는지 공자는 늘 그의 변론을 저지했다. 공자는 말재주가 있는 사람이 공동체에 끼칠 나쁜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가 크게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시대가 의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재주가 있는 사람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판단 그리고 평가에 관심이 컸다. 자공은 사람들이 더불어 무리를 이루어야 하는 정치 공동체에서 구성원 서로가 관찰하고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서로 바라보고 서로 생각하며 서로 판단함은 공동체 구성에 꼭 필요한 능력이다.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행위의 출발이 행위 수행자의 사람됨에 비롯될 때, 이 인경에 대한 관찰과 판단은 아주 중요하다.
자공은 스승의 의견에 맞서기도 했지만, 자공은 다른 제자들보다 공자사상을 휠씬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편이었다. 자공은 언제나 공자를 높이 평가했고, 이는 때때로 지나칠 정도였다. 사기의 '화식열전'에 보면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널리 퍼진 이유도 자공이 앞장서서 스승을 알렸기 때문이다.
4. 顔回
공자에게 스승과 자제 사이를 포함하여 모든 친구 관계는 서로의 자주성과 판단에 대한 신뢰에 기반을 둔다.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오직 안회만이 스승으로부터 '나는 안회만 못하다'는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이를 통해서 공자에게 안회는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자기보다 더 나은 친구이며 동지와 같은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안회는 공자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두 번이나 받았다. 공자에게 배움은 행위 이전 단계에 속한다. 정치 행위자는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행할 수 있다. 공자에게 행위는 특정한 조건으로부터 발생한다. 배운 사람인 선비는 정치 영역에서 행위하려면, 대부 또는 제후처럼 이미 공적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에게 기용되어야 한다. 공자에게 벼슬은 행위를 수행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그렇다면 기용을 준비하는 사람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공자는 시경, 서경, 예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자는 한 사람 한 사람 힘의 차이를 기꺼이 인정했는데, 이유는 이 차이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요소가 될 수 없고, 더 나아가 진보의 가능성을 방해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요소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미리 짐작하고 예측하는 태도가 아니라 미래를 알지 못한 채 현재에서 표현하는 행위이다. 뜻을 품은 사람은 성공을 추구하지만 성공에 얽매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표현이며 결정된 미래가 아니다.
안회는 가난했지만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는 빈한한 살림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었다. 안회는 이 즐거움을 공자로부터 배웠다. 공자가 이렇게 가난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즐길 수 있는 가난과 즐길 수 없는 가난을 구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바른 길이 보이는 상황에서 공자는 결코 가난하려 하지 않았다. 義에 따라 행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벼슬하지 못하고 가난한 때 공자는 이를 기꺼이 즐겼다.
공자에게 어짊(仁)은 정치 윤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그런데 제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스승으로부터 이 개념을 인정받은 사람은 안회였다.안회는 어짊 개념 중에서 특히 소극적 상호성을 의미하는 恕의 원칙에 충실했다. '자기가 서려고 하면 다른 사람도 세워주며, 자기가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도 달성케 한다'는 차원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을 더 깊이 생각했다.
2008.10.3.
김성희 -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공자의 정치사상 : 언어 소통과 정치 행위의 문제를 중심으로」를 쓴 이래 고대 중국 정치 사상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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