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하라 :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
Victor: The Life and Music of Victor Jara
저자: 조안 하라
역자: 차미례
출판사: 삼천리
출판일: 2008년 09월
우연히 신문의 신간 소개란을 보고서 큰 관심을 가졌던 책이었다. 서점에서 발견하고서는 바로 샀는데, 두꺼운 책이어서 이번 휴일기간 동안에 천천히 읽어보고자 했다. 나에게 있어서 '빅토르 하라'는 낯설은 이름이었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갔다. 첫장을 읽어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책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칠레 민요를 바탕으로 한 그의 서성적 노래는 나를 감동케 했지만,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나를 무척이나 안타깝게 했다.
빅토르 하라는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80km 정도 떨어진 롱켄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아만다는 인디오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었고 민요를 무척이나 잘해, 마을의 행사같은 곳에 곧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의 가족은 곧 산티아고로 이주를 하게 되었지만, 그가 15세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후, 빅토르 하라는 신학교에 입학하나 2년만에 자퇴를 하게 된다.
군대를 제대한 이후, 변변치 않은 직업을 얻어 생활하던 그는 칠레대학 부설 연극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고, 이후에 연기에서 연출로 그 전공을 바꾸게 된다. 이 때, 그는 영국 출신의 무용가인 조안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때 조안은 칠레인 남편과 이혼을 한 상태로 이미 아이가 하나 있는 상태였다.
연극 연출가로 그의 명성은 점차 커져 갔고, 해외에도 초청되어 바쁜 공연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칠레 민요에 대한 수집을 하게 되고, 연극연출을 비롯하여, 음악활동에도 나서게 된다. 처음 그의 음악은 개인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차 저항음악의 성격을 띄게 된다. 가난한 소작농 출신의 그에게 있어서 미국과 소수의 엘리트 지주계급에 의해서 대부분의 농민과 노동자가 착취되는 현실을 왜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어나라.
저 산맥을 바라보라.
바람과 태양과 물의 원천을
강물의 흐름을 바꾸는 그대
너의 영혼의 이랑에 씨를 뿌리는 그대여
일어나라.
너의 두 손을 바라보라.
너의 형제들에게 손을 내어 주고 함께 자라나라.
피로 뭉친 우리는 함께 나아가리니
오늘은 우리의 장래를 만들어 가는 날
우리를 비참함 속에 가두어 주는 주인의 손에서 해방시키시고
정의와 평등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높은 산길에서 들꽃을 바람에 날리게 하듯 우리에게 불어오시며,
불처럼 내 총의 총구를 깨끗이 해주시며,
당신이 이 땅에서 마침내 뜻을 이루시듯
우리에게 힘과 투쟁할 용기를 주소서.
일어서라.
너의 두 손을 보아라.
너의 형재들에게 손을 내어 주고 함께 자라나라.
피로 뭉친 우리는 함께 나아가리라
지금도, 우리가 죽는 그 시간에도
아멘.
- 어느 농민에게 바치는 기도
빅토르 하라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칠레 농민과 노동자를 위해서 노래 불렀다. 그의 노래는 이러한 민중들에게 커다란 메시지와 단결을 불러 일으켰다. 개혁의 요구는 더욱 무르익었고, 1970년 선거에서, 아옌데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인민연합이 보수파인 국민당과 기독교민주당을 누르고 승리를 거둔다. 라틴 아메리카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좌파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아옌데 정권은 착취의 상징인 미국기업의 구리광산을 국유화하는 등, 각종 정책을 시행했으나, 이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왔다.
1973년 9월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을 비롯한 군부는 대통령궁을 폭격하며 쿠테타를 일으켰고, 아옌데 대통령은 결국 자살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군부에 의해서 체포되었고, 학살되었다. 빅토르 하라도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총살되었다. 1970년에서 1973년까지의 짧은 봄은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이 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란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자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 그 본질 자체로부터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그 위대한 소통능력 때문에 게릴라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존재가 바로 예술가인 것이다."
칠레의 핍박받는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 그의 저항의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도 본서의 부제도,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 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의 노래는 생전에는 농민, 노동자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사후에도 여전히 하나의 상징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연극, 춤, 노래와 같은 예술이 사회변혁의 커다란 자극과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이 확실하다. 빅토르 하라와 같이 우리들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나는 어쩌면 칠레의 지난 날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 반대로 한국의 과거에서 칠레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두 나라는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생각되지만, 외세와 소수의 기득권 세력과 그에 결탁한 군부세력에 의해서 오랜 시간 고통받은 공통의 경험이 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그리고 그들이 바꾸려했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에게는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서 모두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원동력이 있음을... 여전히 믿는다.
2008.10.5.
Victor Lidio Jara Martinez (September 28, 1932 – September 15, 1973) was a Chilean teacher, theatre director, poet, singer-songwriter, and political activist. A distinguished theatre director, he devoted himself to the development of Chilean theatre, directing a broad array of works from locally produced Chilean plays, to the classics of the world stage, to the experimental work of Ann Jellicoe. Simultaneously he developed in the field of music and played a pivotal role among neo-folkloric artists who established the Nueva Cancion Chilena (New Chilean Song) movement which led to a revolution in the popular music of his country under the Salvador Allende government. Shortly after the U.S.-backed September 11, 1973 Chilean coup, he was arrested, tortured and ultimately machine gunned to death—his body was later thrown out into the street of a shanty town in Santiago. The contrast between the themes of his songs, on love, peace and social justice and the brutal way in which he was murdered transformed Jara into a symbol of struggle for human rights and justice across Latin America.
http://nuevacancion.tistory.com/category/Victor%20Jara
https://www.nytimes.com/2023/11/22/world/americas/joan-jara-dea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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