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의 철학 공장: 위기와 희망으로 그려보는 현대 철학의 자화상
저자: 박승억
출판사: 프로네시스
출판일: 2008년 03월
서양철학이라고 한다면 그 사유방식의 차이(저자가 말했듯 서양철학의 치밀한 개념적 논증)에 기인한 어려움으로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복잡해 보이고, 추상적 개념에 대한 공허한 말장난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하지만, '찰리의 철학 공장'을 읽으면서 나는 그 동안 어렵게 느껴졌었던 현대 철학의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용어와 개념들로 인해서 약간은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 어떤 철학 책보다 잘 쓰여진 책이 아닐까 한다. 2번의 정독 끝에 나는 찰리 채플린 영화의 페이소스를 통하여 현대 철학의 모습을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이 책을 꼭 일독하도록 권하고 싶어진다.
1. 현대철학의 딜레마
신의 완전성을 증명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자연철학자들의 신성한 과학은 역설적으로 신을 우주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신적 권위에서 이성적 권위로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뒤를 이은 이성도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계몽시대는 거대한 이성의 형이상학으로 귀착되었다. 현대철학은 이러한 형이상학적 보편성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철학적 탐구의 목적은 무엇인가? 보편적 진리, 삶의 지혜 아니면 객관적 지식.. 이러한 모든 질문들은 진리 혹은 지식의 세속화와 관련이 있다. 한편 미래에 대한 예측불가는 곧 시스템(근대이성)의 위기를 뜻한다. 무질서의 증가는 기존질서에 억눌린 파괴적 시도들을 조장했고, 이러한 아노미 상태에 대한 반동은 새로운 권위를 요구한 것이다. 오늘날 철학은 그 진정성은 형이상학에서 찾으려고 하면서, 동시에 형이상학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는 딜레마, 정체성 위기에 빠져있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는 현대철학의 선택을 본서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2. 귄위의 붕괴
20세기의 재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체주의 등장은 19세기 말 이래로 가속화된 계몽적 이성의 붕괴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세계를 설명하는 문제에 있어, 신화나 종교를 통하여 얻어지는 진리의 초월적 권위로부터 인간 지성의 노력 끝에 얻어진 진리라는 세속적 권위로 이양되었고, 더 나아가 세속적 권위는 신성한 권위를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신성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진리의 권위는 계속되는 세속화 속에서 자기 자신의 신성성을 결국 포기해야 되는 역설에 빠지고, 진리의 권위는 결국 인간이성으로 이양된다. 이러한 계속된 세대교체는 '권위'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신화와 종교, 철학(형이상학), 과학으로 진보를 거듭한 인간이성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의 삶은 더욱 불확실한가. 문제의 근원은 세계를 통치하는 신성한 권위의 붕괴로 인해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체계의 권위도 함께 붕괴한 데 있다. 근대 형이상학은 가치와 사실, 진리와 지식을 모두 하나의 체계 안에서 설명하고자 했고, 이러한 동일성 전략은 전체 만을 진리로 간주하는 전체주의 등장을 조장했던 것이다.
3. 확실성의 위기
인류의 역사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계몽적 이성의 소박한 신념은 복잡한 현실에 의하여 한계를 드러냈다. 계몽적 이성이 삶의 확실한 방향성과 지표를 제시해주리라는 믿음의 붕괴는 삶의 위기이자 곧 철학의 위기였다. 근대과학이 형이상학에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실험과 수학이라는 탁월한 장비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조차도 완전한 학문은 아니다. 이러한 수학의 위기는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가열시켰다. 또한 대상 일반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 문제들도 야기시켰는데, 그것은 추상적 대상의 존재성이 의심스럽다면 과연 이런 대상들을 탐구하고 진리를 말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당연히 과거에 당연하게 여겨진 신성한 권위를 자연스럽게 붕괴시켰다. 가장 객관적인 탐구의 모범은 과학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철학은 어떤 관계를 정립해야될까. 분석철학 계열은 철학을 근대 이래로 발전해온 새로운 학문이념 (즉 자연과학)에 맞는 형태로 혁신하는 것, 간단히 말해 철학을 좀 더 과학적으로 만들거나 최소한 과학적 탐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는 것으로, 후설의 현상학은 과학보다 더 엄밀한 철학을 통해 과학의 불완전한 객관성을 극복하는 진정한 의미의 객관성을 확보함으로써, 철학의 근본적인 이상을 되살리는 것, 그리고 실존철학은 철학은 과학과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바로 그런 관점에서 과학이 탐구하지 못하는 혹은 탐구할 수 없는 종류의 앎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4. 새로운 모색
19세기가 되면서 과학은 영역확장을 계속했고, 철학이 품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둘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재탐구했다. 이런 가운데 철학은 세계를 묘사하는 기본수단인 언어를 새로운 탐구대상으로 함으로써 좀더 과학과 가깝게 다가가게 되었다. 논리적 원자론자들은 철학의 임무가 언어를 분석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교정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형이상학을 거부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원리가 여전히 형이상학적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또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의미의 기준을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 것, 즉 검증 가능성으로 삼을 때, 그 검증 가능성 자체가 경험적인 주장이 아닌한 무의미한 주장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실험심리학의 발전은 철학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신성성을 부여할 수 있는 마지막 뭔가를 세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 이성의 성장이 자기 자신의 신성성을 제거한 것이다. 자연과학화한 심리학의 발전은 철학과 과학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시했다. 분석철학적 전통은 철학을 좀더 과학 쪽에 가까이 다가가게 함으로써 철학과 과학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전략을 취한다. 철학은 과학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철학을 이 세계에 관한 진리를 탐구하는 하나의 학문으로 유지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5. 또 다른 선택
과학의 거센 도전은 확실히 철학을 변화시키는 동기로 작용하였다. 후설을 중심으로 한 현상학은 근대과학의 기저에 깔린 '철학적 태도' 즉 실증주의를 정면으로 공격한다. 실증주의의 오류는 의식과 대상을 실체적으로 분리시킨 근대 철학의 전제를 그대로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즉, 자연과학이 참된 학문의 이상이 됨에 따라 학문과 인간 삶 간의 연결고리가 아예 끊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후설은 무기력해진 철학의 혁신을 통해서 단지 철학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에 방향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후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실존주의는 반주지주의적 전통에 서서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6. 그리고 남겨진 것들
왜 철학은 우리 삶에 대해 더이상 의미있는 이야기를 못하는가? 그것은 신성한 철학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철학의 위기를 말하던 다양한 사람들의 대안에도 불구하고, 철학은 여전히 위기이다. 하지만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다면 우리에게 좋은 일이며,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급진적 생태주의자들의 생가처럼 지구 생태계에 좋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2008.10.22
박승억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현대 독일철학의 한 조류인 현상학을 전공하고, 「후설의 학문 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트리어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과정을 마쳤고,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를 거쳐, 지금은 청주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피사의 사탑과 트로이의 목마」, 「셜록 홈즈를 위한 의미론」 등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원으로 독일에 머물면서 발표한 논문 「세계의 여러 얼굴들」은 저명 학술지Phaenomenologische Untersuchungen에 게재되었으며, 동시에 철학연구회 최우수논문상(2004)을 수상했다.
페이소스 (pathos) 고통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용어로서, 극중의 연기자에게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극적인 표현방식. 이때의 주인공은 선천적인 성격상의 결함이 아니라 운명이나 일반적인 주위상황의 불운한 희생자이다.
실존주의 (實存主義, existentialism)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생(生)의 철학’이나 현상학의 계보를 잇는 이 철학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문학이나 예술의 분야에까지 확대하여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한 유행사조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 성립 당초의 실존주의의 주장 내용이 희미해져 실존이란 말뜻도 애매해진 감이 없지 않다.
형이상학 (形而上學 metaphysics) 경험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본질에 관한 궁극적 원인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어원은 《역경(易經)》 계사(繫辭)편의 <형이상자(形而上者)를 도(道)라 하고 형이하자(形而下者)를 기(器)라 한다>에서 라틴어 메타피지카(metaphysika)를 옮기기 위해 따온 것으로, 메타피지카는 메타(meta;後)와 피지카(physika;自然學)의 합성어이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문의 순서를 말할 때 자연학을 먼저 배운 다음 모든 존재 전반에 걸친 근본원리 즉 존재하는 것으로 하여금 존재토록 하는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제1철학(prōtē philosophia)> 또는 <신학(theologike)>을 배워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가 죽은 뒤 BC 1세기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제1철학>을 <자연학> 뒤에 놓고 <자연학 뒤에 놓여진 것(ta meta ta physika)>이라 한 데서 유래한다. 내용은 처음에는 자연계의 모든 존재사물의 존재에 대한 여러 원리·원인을 초월(trans)한 최고의 원리·실재(實在)를 다루는 초자연학을 뜻하였으며 그 뒤에는 일반적으로 경험적 현상을 초월한 원리·실재 또는 가설(假說)·상정(想定)에 관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뜻하게 되었다.
분석철학 (分析哲學, analytic philosophy) 분석철학이라는 이름 속에는 다양한 경향이 포괄되어 있다. B.러셀에서 시작, L.비트겐슈타인, R.카르납과 그 후의 일부 언어학자들에 의하여 수행되는 형식언어(形式言語)의 구축을 통한 의미분석, G.E.무어의 철학적 언어의 명료화에 대한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일상언어의 의미분석을 시도하는 G.라일, J.오스틴 등 일상언어학파(日常言語學派)의 활동, 검증 원리를 토대로 하여 철학의 과학화를 시도하는 M.슐리히, F.바이스만, H.파이글 등의 논리실증주의자들, 그리고 W.V.O.콰인, P.스트로슨 등 논리학과 언어학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진리에 관한 새로운 의미론적 접근을 시도하는, 최근 20여 년 간의 철학적 업적들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다양하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들 철학적 활동은 모두가 논리적 ·언어적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데 공통점이 있고,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이들은 모두 분석철학이라고 불린다.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26 April 1889 – 29 April 1951) was an Austrian philosopher who worked primarily in logic, the philosophy of mathematics, the philosophy of mind,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 As one of the twentieth century's most important philosophers, his influence has been wide-ranging. Before his death at the age of 62, the only book-length work Wittgenstein had published was the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which Wittgenstein worked on in his later years, was published shortly after he died. Both of these works are regarded as highly influential in analytic philosophy.
라플라스 (Pierre Simon de Laplace, 1749.3.23~1827.3.5) 칼바도스의 보몽타노주에서 태어났다. 1765년 육군학교 위탁학생으로 있을 때부터 수학의 재능을 나타냈다. 1767년 파리에서 달랑베르의 인정을 받고 고등사범학교와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로 취임하여 행렬론 ·확률론 ·해석학 등을 연구하였다. 1773년 수리론(數理論)을 태양계의 천체운동에 적용하여 태양계의 안정성을 발표하였다. 또한 오일러와 라그랑주 이래 미해결문제로 남아 있던 목성과 토성의 상호섭동(相互攝動)에 의한 궤도의 이심률과 경사각은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고 장주기변동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 후 이 변동 한계에 관해 라그랑주와 서로 반론이 거듭되었으나, 1784∼1786년 라플라스가 《파리과학아카데미 기요(紀要)》라는 잡지에 3편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1787년 달의 공전가속도는 지구 궤도의 이심률 변동에 기인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와 같은 획기적 성과를 체계화하여 1799~1825년 《천체역학》(전 5권)을 출판하였다. 이것은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맞먹는 명저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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