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못난 조선 : 16~18세기 조선 일본 비교

soocut28 2025. 5. 11. 07:50

못난 조선 : 16~18세기 조선 일본 비교
저: 문소영

출판사: 전략과문화

출판일: 2010년 10월

 

교보서점에 갔을 때던가. 정확한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자가 나라를 망쳤다' 라는 책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직접 사서 읽지는 않았지만, 주자학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였던 경직된 조선의 이미지와 주자학, 양명학, 고증학, 난학 등을 골고루 받아 들였던 일본의 이미지가 순간 머리 속에서 교차됨을 느꼈다. 그것은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와 제국으로 성장한 나라로 대비되었다. 왜 우리는 일본처럼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일까.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피상적인 생각이고, 변명이다. 정확하고 면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됨에도 우리는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식민지로 전락한 쓰라린 기억 때문인지, 우리 주변에 민족주의는 만연해있다. 우스개 소리로 전세계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일본을 무시하는 것은 한국인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종종 일본의 저력을 무시하며 과소평가한다. 그리고는 중국문화가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에 일종의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즉, 미개한 일본에 문명의 세례를 준 것은 발달된 한반도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이 과장된 측명이 없지 않겠지만, 사실인 것은 맞으며 우리가 거기에 일종의 자부심을 느낀다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일본도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일본역사의 발전에 있어서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이 나빠 근대화를 하지 못했다는 그 어이없는 생각은 순진하다 못해 단순하다.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라이샤워가 지적한 대로 물론 지도층이 한국과 중국에 비하여 근면성실했던 것도 있겠지만, 수백년에 걸쳐 축척된 힘의 결과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한 이면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우리는 미개한 일본인이라는 어이없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문소영씨의 '못난 조선'은 그런 면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기자출신으로 그녀가 쓴 이 책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허술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물론 전혀 없진 않지만, 기존의 학자가 쉽게 쓸 수 있는 사실의 것이었나는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민족주의가 만연한 이 곳에서 누가 16-18세기 일본의 경제력과 문화가 우리보다 뛰어났다고 용기있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학시절, 교수님은 자신의 동료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의 실상을 논문으로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토지조사사업이 비교적 공정하게 이루어졌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물론 사실상, 조선왕조의 토지소유권은 다소 불분명한 점이 없진 않았고, 일종의 공동 소유지와 같은 것들이 무척 많았다. 다만, 그 소유지에 대한 관념상 소유개념을 일반 대중이 가졌고, 따라서 이것이 국유지로 귀속되면서 불만은 터져 나왔다.) 그 후, 그는 다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15세기까지 비슷했던 한국과 일본의 경제, 문화는 16세기가 되면서 점차 차이를 보이게 된다. 먼저 문화적 측면을 살펴보면, 조선의 도자기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발전했는데, 조선의 백자는 중국의 청화백자를 본뜬 것이었는데, 청화백자는 안료(코발트)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왜 조선에는 민무늬 백자가 주를 이룬 것인가. 조선이 청화백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금보다 비싼 안료를 명나라에서 수입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선은 다른 안료를 사용해서 백자를 만들었는데 이를 철화백자라고 한다. 반면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도공을 데려가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일본식 채색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본식 채색도자기는 유럽에서 특히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일본은 이를 네델란드 상인 등을 통해 수출했다. 한편, 일본은 조선의 분청사기를 좋아해 이를 수입했지만, 끝내 이를 상품화하지는 못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일본의 도자기 수출은 도자기를 싼 일본판화, 즉 유키요에의 선풍적인 인기를 만들었다. 이는 유럽의 인상파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이 주자학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여 급속히 쇠퇴하는 와중에 일본은 도자기 등의 상품을 통해 부를 축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선 내용처럼 조선과 일본의 해외교역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일본 막부는 은광산을 적극적으로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활발한 무역을 했다. 또한 네델란드와 같은 서구와는 막부가 독점하기는 했지만, 꾸준히 무역을 지속했다. 동남아시아 등지의 주요 항구에서는 일본인 정착촌이 생기기도 했다. 쇼군은 적극적으로 부국강병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의 사정은 영 달랐다. 주자학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인 조선은 상업을 천시했을 뿐만 아니라 억제했다. 상품의 개발과 교역에는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라는 갈 수록 피폐해지고 가난해졌다. 동 시기 일본과 중국이 서구와 제한적이지만 꾸준히 교류하고 발전했던 것에 비해서 조선은 도무지 상품화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교역대상에도 끼지 못했다.

정리하면, 일본의 근대화 성공은 단순한 운이 작용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과 조선의 경제력은 15세기를 지나면서 점차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일본이 채색도자기, 은 등을 수출하여 부를 축척했던 것에 비해서 조선은 유일하게 상품화할 수 있었던 인삼 조차도 그 이후에 일본이 자체 재배에 성공하면서 내리막을 달렸다. 다양하고 특색있는 일본만의 문화를 만들고 있었던 것에 비해 조선은 주자학에 경도되어 중국의 아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이 주자학, 양명학, 고증학, 난학 등의 다양한 학문을 받아들여 꽃을 피웠다면, 조선은 오직 주자학에만 몰입된 상태였다. 재조지은을 갚기 위해, 청나라를 의식적으로 멀리하면서 조선은 세계와의 유일한 창구였던 중국과도 멀어지고 만다. 그리고 근대화의 물결이 흘러나오는 과정에서도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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