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왕권과 교역
저: 이성시
역: 김창석
출판사: 청년사
출판일: 1999년 04월
일본 정창원에 신라의 많은 문물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 정창원은 일본 천황가의 창고로 보면 된다. 여기에는 다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희귀유물들이 가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세다 대학의 문학부 교수인 저자는 이 정창원 보물을 통하여 8세기 동아시아 지역의 교역양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그 동안 일본에서는 견당사와 이를 통한 외래문화인 당문화의 유입, 이후 국풍문화라는 일본의 고유문화의 발전이라는 발전선 상에서 신라, 발해와 일본 간의 교류를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만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교역의 중심은 신라의 상인들이 주축인 사무역에 의지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견당사에 의한 일본 문화의 발전은 이른바, 메이지 유신을 통한 서양 문화의 유입을 통한 일본 문화의 발전과 같은 일맥상통의 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게 설명되어 왔고, 이용되어 왔던 것이다. 견당사의 의미는 이러한 가운데 강조되었다.
저자는 일본 정창원의 모전, 수저, 가위 등의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서 신라와 일본 간의 활발한 문화의 교류를 설명하고, 덧붙여 이러한 제품들의 포장을 위해서 사용되었던 폐문서(신라촌문서 등)를 통해서 구체적인 양상을 유추하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8세기의 신라와 일본 간의 교류는 이 전과 같이 신라 상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히 지배층의 전략과 국제정세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즉, 발해와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던 신라가 일본을 하나의 우호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번국으로서 신하의 예를 갖추어 일본에 입조했으나 국제정세의 긴장 완화로 인하여 경제적인 실리를 챙긴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발해에 관해서도 물론 비슷한 이유를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과 해석이 과연 어떻게 해석될 지는 의문스러운 것이다. 사실상 조선시대의 쓰시마번주는 자주 일본 국왕의 사자로서 경제적인 실리를 챙겼으며, 한편으로는 쓰시마를 조선에 편입시키도록 요청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을 보고서 일본이 조선왕조의 번국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과 같이, 저자가 신라의 공식적인 사절단이었다고 주장하는 김태렴 왕자의 사절은 현실적으로는 신라상인의 계책이었을 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시각이기는 하지만, 일본 측 사료에만 의존해야 되는 상황에서 편향된 결과로 인한 왜곡이 염려스럽다. 특히 그것이 일본과 관련되었다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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