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 : 정준호
출판사 : 후마니타
발행일 : 2011년 05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때는 내용보다는 일단은 제목과 표지가 선택의 기준이 되고는 한다. 물론 다른 분의 경우에는 다른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 달리 말하면 내가 목적했던 바는 아마도 좁은 의미의 인간을 숙주로 한 대표적인 기생충의 생활사, 습성, 감염경로, 치료방법 혹은 여기에 곁들여진 역사적 혹은 서사적 서술이었다. 하지만 책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주제를 가졌던 것 같다. 솔직한 심정으로 약간의 실망감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일 것 같지만, 기생충이라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관심이 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앞서 내가 기생충의 정의에 대해서 인간과 관련된 즉, 인간에 기생하는 것을 전제로 한 좁은 의미로 해석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나같은 무지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자는 보다 광의의 의미로 '기생'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해 자신의 생장과 번식을 다른 생물체에 의존하는 과정이 필수적인 생물을 기생충에 포함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기생충하면 떠올리는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과 같은 장내 기생충만이 아니라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말벌 따위도 함께 이 책이 다루는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러한 기생충은 생명의 탄생부터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세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 그리고 DNA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Junk DNA가 그러한 예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생명의 시작부터 기생충은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기생충 자체는 저자가 말한 대로 전 생물종의 절반을 차지하는 '보편적인' 생물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기생충은 해를 입히는 성가신 존재 혹은 질병의 근원처럼 여겨지지만, 기생충의 존재를 반드시 부정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기생충은 생태계를 유지하고 순환시키며 진화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생태계의 다양성과 건강을 유지하는 엔진으로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기생충의 존재는 개체 수 조절과 진화적 압력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는 정확한 기생충의 역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장내 기생충 등이 근대 들어와 꾸준한 노력으로 사라지면서, 동시에 발생한 천식, 아토피, 류머티즘과 같은 질병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즉, 우리 몸이 과민한 면역체제를 가동시켜 발생하는 이러한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 어쩌면 장내 기생충 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위생가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기생충은 큰 영향을 끼쳤다. 서구 제국주의의 확산에서 말라리아와 황열병 따위의 병은 큰 위력을 발휘했으며, 기생충학은 이에 따라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천연두의 정복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적 전략은 기생충의 진화를 촉진하게 되었고, 각종 방충제 등에 내성이 생김에 따라 치료제의 약효는 갈 수록 약화되었다. 여기에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파괴는 각종 질병의 중간숙주 역할을 하는 모기와 같은 해충이 창궐하게 하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갔다. 저자는 이러한 파괴적 활동을 중단하고, 자연친화적 해충예방법과 주거 생활 조건의 향상을 통한 기생충 예방을 주장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영원히 기생충에게서 자유롭지 못할 지도 모른다. 내 몸 속에서 혹은 당신의 몸 속에서 기생충은 함께 할 지도 모른다. 물론 기생충이 일반적으로 해롭고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지만, 우리 인간은 그러한 오래된 동반자인 기생충에 맞춰 살아가고 진화했다. 불과 얼마 안되는 근대에 우리는 공격적 전략을 채택하였고, 이제 기생충에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선진국가에 해당하는 것일 뿐, 아직도 세계 인구의 5분의 1은 이러한 기생충으로 인한 소외 열대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는 관점을 새롭게 하여 '보편적 생물'의 하나로 기생충을 연구할 때가 온 것은 아닌가. 개인적으로 기생충으로 인한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의 창궐이 인간의 탐욕이 부른 또 하나의 화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정준호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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