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나와 너의 사회과학

soocut28 2025. 5. 12. 15:31

나와 너의 사회과학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  

저: 우석훈

출판사: 김영사

출판일: 2011년 03월 14일

 

199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니던 내 세대부터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따위는 남아 있는 선배들의 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격렬하게 대학시절을 보내고 사회 모순에 적극적으로 싸운 후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동체 의식이 사라져가고, 한편으로는 개인적 삶의 가치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마도 90년대 중반이 아닐까? 물론 과 소모임에서 여러 가지 역사적 주제를 함께 토론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가치를 둔 것은 다른 것들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젊은 세대를 바라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들이 보다 넓은 것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유산을 남겨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잊혀져 가는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이 이 책을 통해서 살아날 수 있길 빌어본다.

사회과학은 인간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모든 경험과학을 말한다. 복잡한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는 힘이 사회과학에 있다. 고전적 의미에서 철학은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대별되는데, 존재론은 "있는게 왜 있는가?"는 질문이다. 인식론은 그 다음에 오는 것으로 우리가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혹은 우리가 그걸 알 수 있기는 한 것인가에 해당하는 질문이다. 존재론과 관련된 질문은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 하며 신과 같은 절대자로부터 출발할 것인가 존재하는 물질 자체로 출발한 것인가 신학과 과학의 분기점이다. 사회과학은 이렇게 형이상학이 아니라 과학이다. 사회과학에서 학문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예는 거의 없었고, 언제나 사회가 학문보다 먼저 변했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하에서 등장했다. 철학사에서는 신금욕주의(Neo-stoicism)로 부르며, 금욕도 이기적으로 하다보면 이타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았다.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 제레미 벤담이 이러한 논의의 흐름에서 자신의 이론을 만들었다. 한편 에밀 뒤르켐이라는 프랑스 사회학자는 '사회분업'에서 사회에는 '연대(solidarity)'가 있어 기계적 연대 (mechanical solidarity)와 유기적 연대 (organic solidarity)로 구분하여 시장이 도입되면 꼭 연대를 하지 않아도 자연히 노동분업에 의해서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게임이론에서 모두가 다 이기심만 가지고 전략을 짜면, 모두가 자신의 전략을 바꾸지 않는 균형상태 즉 '내쉬 균형'에 도달한다. 그러나 기본적 행위를 모두 이기적 동기로 설명하려면 난관에 부딪친다. 결국 이기주의적 행위만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이타주의적 행위를 유도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게 최근의 흐름이 되었다. 인간의 본성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지식을 전달해서 지혜롭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저자가 말한 대로  집단지식 (collective knowledge)로 이름붙은 시도는 국내에서 아직까지 시도된 적이 없고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효과는 높을 수도 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를 통해 '생각하는 자기' 즉 이성을 갖춘 근대적 존재가 공식적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이성이 경험적인가 아니면 선험적인 것인가에 따라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으로 나눈다. 이 가운데 칸트, 피히테, 헤겔의 독일 성찰학파가 등장한다. 헤겔은 그리스 시대 이후로 계속된 두 가지 흐름을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라는 것을 통해서 통일한다. 이 시기 학자는 대부분이 수학자이면서 동시에 과학자였고 또 철학자였다. 그러나 20세기는 개별 학문이 발전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제 더이상 '거대 이론 (Grand Theroy)'가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분석하는 대상 자체가 이렇게 분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사회는 전문가들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라는데 의문이 없지만 그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따라서 좁고 깊게 아는 사람들이 움직이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줄 기획자가 필요하다. 사회과학을 통해 지금이라도 백과사전형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많이 양성해야만 한다.

헤겔과는 다른 이론을 주장한 것은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 (Phenomenology)이다. 후설의 아래 독일의 하이데거, 프랑스의 사르트르로 대표되는 실존주의가 등장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무로 돌리는 무'라는 핵심 개념을 쓰는데, 이 개념은 인과론 (causality)에서 시작된다. 즉, 당연히 생겨야 할 이벤트가 생기지 않는, 그래서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그 엄청난 무에 해당하는 사건을 초래할 존재는 이 우주에서 오직 인간 밖에 없다고 주장하여 인간에게 엄청난 권한을 부여했다. 여기서 선택의 개념이 중요하다. 인식의 틀이나 시각을 선택하는 순간이 인생에 꼭 오기 때문이다.

학문적으로 '방법론적 개인주의 (methodological indiviualism)'과 '방법론적 전체주의 (methodological holism)'으로 개체와 구조로 선택할 수 있다. 경제학은 인간에게는 자신의 고유한 효용함수가 있고,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제약 조건에서 최대 만족을 이끌어내는 행위를 한다는 '경제적 인간'을 설정한다. 그러나 인간이 마음대로 하면 세상을 망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서 레옹 왈라스는 선형방정식을 통해서 균형가격으로 사람들이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이론적으로는 누구도 거래에 실패하는 경우 없이 일반 균형 (general equilibrium)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서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똑같은 사회적 최적점에 도달한다고 하여 이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기반이 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해 강조했다. 왈라스와는 반대로 케인즈는 일종의 집단적 행위 혹은 평균값의 세계에서 자신의 경제이론을 그렸다. 따라서 왈라스와 케인즈의 세계는 이론적으로는 병립이 불가능하다. 하이에크의 제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왈라스의 개인에 관한 이론에서 자연스럽게 거시경제학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하긴 했고 이를 시카고 학파라고 부른다. 케인즈의 이야기를 에밀 뒤르켐은 I ≠Σi 즉 개인 (indivisual)의 합이 전체 I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 두 가지 방식에서 제시하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구조는 모두 상이하다. 여기에 구조주의가 있는데, 문제는 매우 직관적이고 설득력이 높지만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20세기 중반이 넘어가면 경제적 개인주의와 구조주의의 양 극단의 중간에 서려는 노력이 이는데 문화적 접근이 그것이다. 이는 문화 기능주의 혹은 문화상대주의에 봉착하고 모든 문화를 전혀 비판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구조와 개인 사이에 있는 다른 이론은 구제도학파 (old institutionalism)이 있다. 이들은 경제학의 전통적인 관심에서 사회규범, 윤리, 법률, 관습에 관심을 가진다. 이들이 말하는 제도는 그 자체로 구조도 개인도 아니다.

'설명'은 루돌프 카르납 (Rodolf Carnap)에서 칼 포퍼 (Karl Popper)를 거쳐 파이어아벤트까지 이어지는 과학철학을 형성했다. 포퍼는 과학은 입증을 통해서 자신의 제국을 세워나가는 절대 진리가 아니라 아직 반증되지 않은 것일 뿐인 임시적인 가설로 그 위상이 바꿔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일련의 논쟁을 통해서 학자들이 강조한 것은 과학이 가진 예측능력 즉 미래를 보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우생학의 경우처럼 예측 중심의 과학이 낳은 부작용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가운데 폴 리퀴르 (Paul Ricoeur)는 빌헬름 딜타이 (Wilhelm Dilthey)의 해석학을 들고 나온다. 즉 사후적 접근 (ex post) 혹은 회고적 (retrospective)이라 부르는데 이를 '이해'라고 부른다. 텍스트와 숫자가 중요한 설명의 세계에서 이해의 세계로 넘어오면 저자 혹은 행위자의 의도와 함께 맥락 (context)이 중요해진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공감의 시대로 변하고 있고, 따라서 맥락을 드러내게 하는 작업에 강조를 두어야 한다.

일원론 (monism)은 말 그대로 하나를 뜻하며 이원론 (dualism)은 두개고 이후는 다원론 (pluralism)이라고 부른다. 한편 물질을 중심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객관주의, 마음을 기준으로 한 것은 주관주의라고 한다. 인간의 효용함수를 주장한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주관주의에 속하며, 애덤 스미스에서 마르크스까지는 노동가치라는 객관적 가치 위에 자신의 이론을 세우려고 하여 이는 객관주의다. 가치와 가격 사이의 논쟁 그것이 객관주의와 주관주의 사이의 논쟁이다. 주관주의는 한국에서는 강력한 경제 근본주의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일원론이 극단적으로 전개되면 완고한 환원주의를 강조하는 근본주의가 된다. 물질로 환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유물론자 (materialist)라고 부르며, 마음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유심론자 (idealist)라고 한다. 이론적 효용성으로 따지면 일원론이 이원론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일원론이 너무 강력한 환원주의에 의해서 근본주의 양상을 뜬다는 문제가 있다.

사회분석을 시작하며 사회에 대한 모델링을 하게 된다. 균질적 모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비균질적 모델을 선택할 것인가. 경제학은 균질적 모델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편 보수언론도 균질적 모델의 예이다. 그 사람의 상황에 관계없이 국가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국민'으로 통일시켜 버린다. 그러나 각각의 주체를 '시민'이라고 규정하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국가나 사회에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비균질적 모델을 대표할 것은 마르크스 모델이다. 자본론에서 한쪽에는 자본가가 있고 한쪽에는 노동자가 있다. 기술적으로 따지면 매우 안정적인 시스템을 설명할 때는 균질적인 모델이 강하고, 시스템 안에 모순이나 갈등이 있으면 비균질적 모델이 설명력이 높아진다.

사회과학도 수학에 많이 의존한다. 방정식이 아무리 많고 복잡해도 선형의 세계이다. 그러나 모든 현실적 관계가 선형인 것은 아니다. 일단 함수 자체가 자연의 모습을 띠어 선형이 아닌 경우가 있고, 복잡성이라고 부르는 피드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환경의 제약이나 먹이사슬에서의 천적 관계 때문에 일정한 크기 이상으로 늘어나기는 어렵고 이러한 정체 상태를 수용능력 (carrying capacity)라고 한다. 수용능력에 제약이 있는 생태계는 S자 비선형 함수로 나타난다.

시스템 내에서 비선형의 모습을 갖는 대표적인 경우가 피드백이 존재하는 경우이다. 비선형 모델로 잘 알려진 가설은 '잠김(locking)'현상이다. 이는 더 좋은 기술이 있어도 예전 기술에 일단 담겨버리면 최적 기술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이 있는데, 기술이라는 게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게 아니라 한번 장애를 뛰어넘고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새로운 파괴 현상이 나오면서 급격한 발전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함수를 가우스 함수라고 한다. 한편 분기점 (bifurcation) 모델 그래프도 있는데, 일종의 외부 충격에 대한 적응 모델로 사용될 수 있다.

간단하게 나마 본서의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간략하게 내 서평만 적어도 그만이었지만, 우석훈이 사회과학의 발전과 그리고 20~30대 젊은이들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길 원했고 따라서 자신의 책을 학습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간략하게 사회과학 개설서라고 부르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말하자면, 사회과학 즉,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책을 쓰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길라집이 같은 책이다. 사회과학의 개괄서를 원한다면, 이 책은 그다지 유용할 것 같지는 않지만, 글쓰기에 도전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나쁘진 않을 듯 싶다. 어쨌든 저자가 바라던 대로 우리가 좀더 사회현실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이 책의 요약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