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탁신 : 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

soocut28 2025. 5. 11. 07:28

탁신 : 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
파숙 퐁파이칫 
 | 동아시아

원제 THAKSIN (2009) | 2010 10

 

금년 미얀마 출장을  , 한국에서는 직항편이 없었기 때문에 방콕을 경유했다. 그리고 3 만에 다시 찾은  도시는 내가 처음 배낭여행으로 왔을  느꼈던 강렬한 첫인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달라졌다면 공항까지 마중 나온 일본 거래처의 호의로 편안하게 시내로 들어갈  있었다는  .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  수많은 건물에는 여전히 태국 국기, 노란색 왕실 국기, 푸미폰 국왕의 사진이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태국에 매력을 느낀 많은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방콕을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국에서  수많은 배낭여행객 사이의 이국적 거리를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뉴스에서 자주 들려오는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사회적 모순은 관심 밖인  같다.

1938 입헌군주제 이후, 국민국가 태국 상업자본의 영향력을 배제한  민족의식을 갖춘 태국 시민과 군부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러나 40년에 걸친 태국의 장기 경제 부흥은 단순히 경제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도시 비즈니스가 성장하고 중산층의 부와 사회적 신뢰가 확보된 결과, 태국 시민사회 안에서 화인의 위상이 재조정되었다. 화인은 태국인으로 받아들여졌으며, 2001 국회의원  중국출신은 60~90% 이를 것으로 추정되었다.

새로이 등장한 신진 정치인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러온 관료/군부 세력을 제거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과정의 결과는 타협적이었으니 , 관료, 정치인, 경제인이 한패가 되어 , 제도, 예산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금권정치(money politics)라는 후진적 행태는 정치 체제 자체를 경제에 종속 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부는  자체로 권력이 되었다. 탁신과 같은 재벌은 전통적 방법과 비공식적 연결망을 통해 권력에 접근했으며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1997 금융위기는 세계화가 엄청난 위협이 된다는  그리고 금권정치 체제에 대한 불신을 주었다. 거대 자본까지 나서 태국의 정치 개혁을 요구했고, 재벌 역시 스스로 정치적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40년간의 극적인 성장을 통해 재벌은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는데, 이는 점차 태국사회에 우위를 점하고 국민국가 안에서 재평가되기 시작한 화인이 이룬 성과였다.

한편 경제성장과 더불어 군부 독재 종식은 정치 공간의 확장을 불러 왔다. 1991~1992 군부가 시민의 거리 시위로 실각하자 민간 정치 운동이 시작되었다. 지방에서의 농촌 저항운동과 더불어 도시 중산층은 절대왕정과 군사 독재에 의해 형성된 중앙집권화  태국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분주했다. 그러나 특히 금융위기를 계기로 재벌들은 자본에 대한 정부 지원의 필요성과 세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직접 정치를 관리할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탁신은 일찍부터 부와 권력, 특권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셍새쿠/친나왓 가문은 변화하는 경제와 사회를 반영해 부를 축적했다. 기존의 왕실 경제 체제 아래에서 세금을 징수하였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취향에 맞는 비단을 공급하는 사업을 성장시켰다. 마지막으로 사채와 건설, 부동산을 추가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탁신은 신기술과 높은 수요, 새로운 형식의 자금대출 무엇보다도 정치적으로 얻어낸 과점(oligopoly)이라는 독특한 조합을 통하여 불과 5~6 사이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탁신의 성공이 정치권과의 연결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경쟁자들은 이해했고,  결과 통신 시장은 점차 정치적 경쟁으로 비화했다

2001  탁신은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은 여러 자본가들을 이끌고, 국내 자금 시장을 보호하고 촉진시키기 위해 정치권력을 쟁취하고자 한다. 탁신의 부상은 기업이 지배하던 태국의 금권정치 연장선이었다. 탁신은 동원 가능한 자본을 의석수,  권력으로 바꿔 놓았고 이는 거대 자본 정치(big money politics) 이름 붙일 만했다. 거대한 권력은  권력 자체가 되었다. 2001 1 탁신의 선거 대승리는 바뀐  헌법이  영향이 컸다. 헌법은 정당들의 분열과 연합한 당들의 불안정성을 줄일 목적으로 선거 체제를 바꿔 놓았던 것이다. 새로운 헌법이 추구한 보다 안정적인 정치구조 민주당의 추락과 TRT 대승리로 귀결되었다. TRT  가족 단위 사업가와 농촌 주민들에게 집중했고, 지역 명망가 위주로 진행되는 선거의 규칙을 바꿨다. 권력을 잡자 TRT 지지자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이상으로 보답했고, 탁신을 어떤 태국 지도자들보다  영향력 있는 자리로 올려 놓았다

탁신노믹스는 1세계로 도약하기 위한 성장 지향적 정책이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성공했다고   있다. 정부는 자본을 감독하고 우선적인 분야나 프로젝트 그리고 기업에 패키지화  도움을 제공하고자 해다. 그러나 탁신노믹스는 가계부채 축척, 비즈니스 신용대출 할당 감독, 준재정 파이낸싱 등의 리스크가 존재했다. 이러한 부채 리스크와 함께 측근 리스크가 이었다. 특히 자산투기  주식시장이 특히 높았다

재벌에게 민주주의 경향은 위협적인 현상이었다. 대자본은 자원을 축적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 통제 국가를 추구했다. ‘표현의 자유 대한 탁신의 적대적 행동은 정권 주위에 집결한 재벌 기업의 야심과 두려움을 반영한 결과였다. 경제 성장을 위한 희생보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의제를 잠재우기 위해서 탁신은 서구의 사회계약설과 현대 불교철학을 접목해, ‘착하고 사심 없는 리더십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했다.

2005 후반부터 2006 초까지 탁신은 증가하는 압력에 맞서  부류의 대상에 직접적인 프로젝트를 쏟아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포퓰리즘적 정책을 설명하는 대중회견장, 도덕운동, 외국계 기업과의 대형 행사를 통한 국제적 이미지 형성이 그것이었다. 이에 따라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다. 한편에서는 탁신을 국가 기구와 미래에 위협이 되는 기업적 마인드를 가진 부패한 정치인으로 묘사하고 반대로 군주제의 도덕적이고 입헌적인 권력을 환기시켰다. 한편 탁신은 태국을  벌기 좋은 곳으로 외국 투자들에게 인식시킴으로써 국제적 신뢰를 획득하고 포퓰리즘 정치를 선보여 강고한 대중의 지지를 형성했다.

그러나 세금 없이 진행된 친코퍼레이션 매각사건은 군대가 방콕 중산층의 지지 속에 부패를 추방하고 군주제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쿠테타를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미 이전부터 추밀원은 부패를 척결하는 것과 군주제 수호를 연관시켰으며, 국왕은 탁신 같은 부패 정치인에 반대되는 도덕적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쿠테타를 통해 군부는 태국 정치를 감시하는 역할을 다시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군부의 시도는 실패했다. 군부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통한 탁신 세력의 귀환을 막지는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반탁신 세력은 선거로 구성된 합법적인 정부와  한번 전쟁을 벌려야 되었다. 엘로우 셔츠와 레드 셔츠 시위대의 반목과 혼란이 계속 되었다.  모든 혼란이 끝나고 탁신은 난민이 되었으며, 국적과 가족, 부를 잃었다.

앞서 말한 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남아시아의  국가, 태국에 대한 관심의 정도는 깊지 않은  하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파숙 퐁파이칫과 크리스 베이커의 탁신 : 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 탁신이라는 현실 정치인을 통해 태국을 보다 깊게 이해할  있도록 해준다. 여전히 태국 사회를 양분 시키고 논란을 일으킨 존재, 탁신. 그를 통해서 당신은 태국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보다  세밀하게 관찰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당신은 탁신이라고 이름 붙인 망원경을 가진 셈이다. 그리고 한편 기업인 출신의 탁신의 부정부패 그리고 그의 몰락이 가져온 시사점을 한국의  정부도 주목해야 되지 않나 싶다.


Christopher John Baker (b. 1948) is a Thailand-based British writer who has made his home in Bangkok for more than 20 years. He is the co-author of A History of Thailand, Thaksin: The Business of Politics in Thailand, Thailand's Boom and Bust, and Thailand's Crisis, all written with Dr Pasuk Phongpaichit. He was the principal writer of the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s Thailand Human Development Report 2007: Sufficiency Economy and Human Development, which praised King Bhumibol Adulyadej's self-sufficient economy theory.

 

Thaksin Shinawatra (Thai: ทักษิณ ชินวัตร, RTGS: Thaksin Chinnawat; pronounced [tʰaksǐn tɕʰinnawat]  ( listen); Chinese: 丘達新; born 26 July 1949) is a Thai billionaire politician and businessman who was Prime Minister of Thailand from 2001 to 2006, when he was deposed in a military c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