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힘 :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저 | 역사비평사 | 2010년 02월
근대라는 개념의 틀에서 우리는 항상 조선시대에 대한 어떤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근대주의라는 탈을 쓴 일본 식민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조선이라는 근 우리 역사에서 5백년을 이어온 시대의 모든 것이 말 그대로 발전의 가능성도 하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일까? 근대의 진입에 실패하고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조선은 우리들 모두에게는 하나의 상처처럼 되어 버리고, 유쾌하지 못한 기억만 안겨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패배주의가 정말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저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경연, 실록, 대동법, 성리학, 그리고 광해군 등의 우리들도 익히 들어왔던 주제들을 통해서 조선시대을 관통하고 재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로웠다.
조선 정치제도의 특징은 언관 및 경연이나 사관제도는 유가적 문치주의를 추구하는 이념형 조직이었다. 경연이라는 말은 풀어보면은 '성경을 공부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경연보다 먼저 봐야 될 제도가 서연이다. 서연 제도는 세자를 교육하는 것이며, 서연의 연장이 경연이라고 할 수 있다. 유가에서는 성인이 아니더라도 성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군주의 덕성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조선사회는 이런 군주가 가져야 할 이상적 인격을 경연이란 제도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
실록은 개념으로 보면 등록의 일종으로 책보다는 문서 쪽에 속한다. 실록 편찬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실록은 당나라 태종 때 편찬되기 시작했다. 실록은 국사의 대명사였으며 한나라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실록은 함부로 볼 수가 없었다. 기록부터 편찬과 보존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되면서 배제와 비장의 원칙이 생겼다. 국가가 새로 수립되면 국가의 정사를 편찬함으로써 정통성을 확인하듯이, 조선 시대에는 선왕대의 역사를 편찬함으로써 자신이 나무랄데 없는 후계자임을 과시하고, 앞으로도 실록으로 상징되는 관례와 전통을 준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대동법은 조선시대에 일어난 가장 큰 정책 변화이다. 조선시대 재정은 세금을 거두어야 운영되며 이는 조용조 체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동법은 두 번째 부세 방법인 공물을 현물이 아닌 쌀로 그리고 특산물 산출지역이나 호가 아닌 논밭에 세금을 부여하는 전결로 바꿘 수세제도이다. 그리고 그것은 1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루어진 끈질긴 개혁이었다. 이러한 공물의 전세화는 부세의 수취 형태를 일원화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 전반의 일원적인 운영을 가능케 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동법은 관행을 정비하고 폐단을 극복하면서 제도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안민과 국가 재정의 안정적 확보였다.
조선시대 성리학에 대한 우리의 시선 역시 근대주의의 틀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주자학을 신봉하는 송시열이 주자학과 다른 경전 해석을 했던 윤휴를 이단이자 사문난적으로 몰아서 죽였다는 학계의 인식이 있다. 그러나 윤휴는 주자의 주석과 다른 해석을 기술한 탓에 사약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기 조선 사상계에 대한 식민주의 이데올로기 접근은 사상계 내부의 현실을 무시했고, 정통과 이단, 사문난적 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결과적으로는 사실의 왜곡과 오해, 편견만 양상하고 이는 실정이다.
중립외교를 표방한 광해군에 대한 인식과 부활은 일본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키치가 광해군을 실용주의 외교로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군주로 해석하면서 왜곡되었다. 이후 이나바의 해석은 이병도의 중립외교라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광해군의 외교는 원칙과 비전, 즉 명분이 있는 실리가 아닌, 명분이 배제된 실리, 즉 힘의 강약에 따라 시세를 쫓는 외교방식이 그 본질이었다. 그것이 곧 식민지인으로 전락한 사람들을 골수부터 일제에 투항시키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는 주제들에 대한 생각과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역사인식이 식민시대 일본인 학자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한계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강조한 대로 5백년을 이어간 조선문명의 발전과 역동성은 우리가 어쩌면 왜써 외면하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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