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

soocut28 2025. 4. 23. 14:07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
저자: 박상하

출판사: 무한

출판일: 2009년 04월

 

생각 지도 못하게 이전에 맡았던 업무에 더해서, 일본 담당이 되면서부터 일이 갑자기 많아져 한동안 좋아하는 책도 잘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은 열심히 하다가 보면은 대강의 흐름이라든지 경향은 알게 되기 마련이다. 좀 거들먹거리면서 이야기한다면 지금은 한층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될까. 처음으로 타사 담당자 분들과의 동반출장을 가게 되었지만,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가능해졌다. 아무튼, 여러 차례 출장과 개인적인 여행을 반복했던 일본이었으므로, 특별한 설레임은 없었고, 일찍 도착한 공항에서는 2박3일의 짧은 시간 동안 읽을 만한 책을 찾아 공항의 간이서점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삼성과 LG', '삼성과 소니' 같은 책들을 흥미롭게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 이라는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우리 현대 기업사에서 이 두 사람처럼 뚜렷한 개성과 흔적을 남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나는 현장을 둘러다니면서, 불같은 성격으로 직원들을 압도하며, 잘못이 있을 때는 구두발로 사정없이 정강이를 걷어차는 왕회장의 모습을 떠올렸고, 치밀하고 깐깐한 완벽주의자 이병철 회장의 모습은 그에 대조하여 떠올리고는 했다.

정주영과 이병철의 성격과 가치관은 그들의 기업운영과 비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정주영은 교육과 능력보다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최선을 다한다면 실현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울산 미포만 갯벌 사진과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를 가지고 선박 수주와 해외차관을 얻은 일화는 너무나 유명한 일이며, 그의 추진력과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주영은 자신이 그린 계획을 확신하며, 직원들을 독려했고, 불가능한 일을 해결해갔다. 그는 현장을 매우 중시했으며, 그의 인재상은 이러한 그의 성격을 반영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그리고 현장경험을 가진 인재를 중요시했다. 그의 경영스타일은 '정벌경영'이라는 말로 축약되기에 이른다.

이병철은 정주영과는 대조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그의 깐깐하고 철저한 성격이 반영되었다. 신사업 추진을 위하여 수많은 검토가 이루어졌으며, 이 결과, 삼성이 추진한 사업은 거의 실패가 없었다. 이병철의 경영스타일은 '황제경영'으로 '명령은 내가 한다.'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정주영과 이병철은 대조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정주영은 빈농 출신으로, 강한 추진

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했으며, 현장을 중요시했다. 그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이병철은 부농 출신으로, 철저하고 냉철한 성격으로 사업을 경영했고, 기술을 중시했다. 이 두 사람의 성격과 경영스타일은 어느새 현대와 삼성이라는 이 두 거대기업군에 일정한 색채를 띄게 했던 것 같다. 현대와 삼성이라는 이름 하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올려졌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자신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자신들이 속한 기업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기억해내곤 한다. 현대와 삼성은 마치 일본의 Mitsubishi와 Mitsui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고는 한다.

흥미로운 기업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전에 이토츄상사의 세지마 류조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불모지대'만큼이나 현대와 삼성의 성장사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저자가 본서를 서술한 동기, 즉 기업가 정신이 실종된 시대에 정주영과 이병철이 보여준 리더십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를 현대의 기업가들에게 연결시키려는 구체적인 시도가 미약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주영과 이병철이 물론 매우 대단한 기업가이기는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들의 역량이 최고조로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렸으므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사업기반이 전혀 없었던 한국에서 이들이 지금보다는 휠씬 많은 기회와 도움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기업가 정신의 실종에 대해서 많은 우려를 하고, 저자도 1970년대 이후 중소기업 중에서 대기업으로 도약한 회사가 없음을 이야기하지만, 나에게는 사회의 발전이 이미 성숙해진 한국에서 이전과 같은 사업의 기회가 적은 것이 오히려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자신이 믿는 바를 최선을 다하여 실천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정주영과 이병철이 그 방법의 차이는 있으되, 목적은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 한계라고 규정짓는 일에 도전해 그것을 이루어내는 기쁨을 보람으로 여기고 오늘까지 기업을 해왔고 오늘도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이 무한한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고 있다. 나에게는 나에게 주어진 잠재력을 활용해서 가능성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 아산 정주영

 

자신의 영혼을 위해 투자하라. 투명한 영혼은 천년 앞을 내다본다. - 호암 이병철

 


Chung Ju-yung (November 25, 1915—March 21, 2001) was, along with his brothers, the founder of Hyundai Group, at one time South Korea's largest multinational conglomerate (chaebol). The Hyundai Group was split up from the 1980s till recently into many satellite groups. Chung had a very successful career. In Seosan, he carried out a successful reclamation project, using a decommissioned oil tanker as a cofferdam. Also, he sent 1001 cows over the DMZ to North Korea. He was the first to propose the Geumgangsan sightseeing excursions.[citation needed] He developed the PONY as the first Korean car, which was the start of Hyundai Motors. He founded the Hyundai Heavy Steel Company, which produced a non-dock shipbuilding method. He died in 2001

 

Lee Byung-chull (February 12, 1910 – November 19, 1987) founded the Samsung Group. He was the son of a wealthy landowning family who used his inheritance to open a rice mill for his first venture. That endeavour was not especially successful, so he established a trucking business in Daegu on March 1, 1938, which he named Cheil, the forerunner to Samsung. He attended college at Waseda University in Tokyo, although he did not complete his deg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