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단백질 이야기: 식인풍습과 광우병,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The family that couldn't sleep: a medical mystery
저자: D. T. 맥스
역자: 강병철
출판사: 김영사
출판일: 2008년 06월
지난 월요일,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조금 넘게 떠나있었지만, 많은 일들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그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었다. 일본에 잠깐 체류했을 때, 텔레비젼에서 광고라든지 프로그램에서 'ECO'라는 주제를 가지고서 고유가 시대에 친환경적이고 에너지절약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 혹은 제품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을 보았다. 최근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친환경제품 박람회인가 하는 행사때문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일본에서의 화두는 'ECO'였다. 반면에 한국에 돌아오니, 6.10항쟁 기념과 덧붙여진 대규모의 '촛불집회'가 시청앞광장에서 계획 중이었다. 한국에서의 화두는 '미국 쇠고기'였다.
가장 좋은 핑계거리는 사회인에게는 일 때문이라는 말이다. 편리한 핑계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에 보여준 무능함에 대해서는 이미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런 일을 예견했으므로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사실 나의 마음 속에서는 앞으로의 5년이 빨리 지나가길 빌 뿐이었고, 그 기간 동안에 건전한 대안세력이 한국을 잘 이끌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아마도 '촛불집회'의 목적은 '광우병 위험에 노출된 미국 쇠고기' 문제에서, 더 나아가서는 현 정권에 대한 무능, 오만, 그리고 정책에 대한 반대로까지 확대된 듯 하다. 그리고 그것은 종국에는 정권퇴진이라는 무리한 구호까지 양산되고 있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시청앞광장은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바로 옆이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전경부대의 일사분란한 움직임과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회사원, 학생들 그리고 수많은 (그리고 매우 자본주의적인) 야식장사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시들어가는 학생운동의 거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시위를 이끌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왔다. 잘 알지못하지만, 과 선배 중 한 명은 축제기간 중에 북한 인공기를 걸었다가,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확실히 10년이 넘은 시간의 흐름이 반영된 탓일까.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광우병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매우 피상적인 것들이었다. 그것은 소에게서 발생하는 질병의 일종이며, 인간에게도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정도였다. 목요일에는 술자리가 없었으므로, 나는 서점에 오랫만에 갈 수 있었다. 서점에서는 현재의 핫이슈에 대한 신간들을 특별코너에 배치하곤 하는데, '미국 쇠고기' 문제가 워낙 민감하다보니, 그와 관련된 책들이 다수 눈에 띄였다. 무려 7-8여권의 책이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출간되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육식의 종말'이라는 조금 자극적인 제목의 책부터 조금은 부드러워 보이는 책까지 다양하게 보였다. 그리고 문득 '살인단백질 이야기'라는 책에 손이 갔다.
무엇보다도, 나는 저자인 D.T. 맥스에 대해서 눈길이 갔다. 그는 일종의 신체 단백질 구조변경에 따른 근위축증 환자였다. 또한 그는 과학 저널리스트였다. 나의 일련의 경험상, 만약 주제가 의학에 관련된 부분이라면, 최소한 그 부분에 폭넓은 지식과 이해가 있는 사람의 책이 가장 핵심을 잘 짚는다고 믿는다. 게다가 저자는 단백질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이 더욱 그의 책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주었다. 만약, 주제가 현재의 화두인 경우, 나는 정말 형편없는 책들을 많이 봐왔던 것이다. 즉, 대중적인 이해를 고려하지 않는 어려운 책 혹은 뉴스를 모아 풀어서 이야기하는 정도의 피상적인 책이 대표적인 예였다.
프리온 질병은 유전, 감염, 우연에 의해서 발병하는 유일한 병이다. 프리온은 생물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감염성 단백질이며, 바이러스와 세균과 같이 행동하며, 이전까지 과학자들은 단백질에 이러한 기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첫째 생물의 모든 형질은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되고, 둘째 살아있는 생명체만이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무생물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복제하고 감염을 일으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D.T. 맥스는 그의 책을 매우 흥미롭게 저술했는데, 그것은 그의 서술방식이다. 그는 프리온 질병의 각 카테고리 별로 그 증상과 문제점을 저술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 프리온 질병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새로운 형태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온 질병에 대한 의학사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프리온 발견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인간의 지혜와 노력을 함께 엿볼 수 있고, 희망을 함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1) 치명적가족성불면증 (FFI)
본서는 200년간 치명적가족성불면증 (fatal familital insomina, FFI)라는 유전성 프리온 질병에 시달려온 이탈리아의 한 가문의 추적부터 시작한다. 이 병은 1/2의 확률로 유전되며, 일단 병에 걸리면 엄청난 땀과 함께 잠을 이룰 수 없으며, 기력이 다하여 죽을 때까지 환자는 뚜렷한 의식으로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 채, 비참하게 사망한다. 이 병은 아마도 베네치아의 한 의사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되이며, 그 정체를 모른 채 가족들은 죽어갔다. 이것이 유전성 프리온 질병이라는 것은 그 후, 칼턴 가이듀섹과 프루스너와 같은 학자들이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1980년대 증명되게 된다.
(2) 스크래피 (Scrape)
19세기 영국의 로버트 베이크웰은 팽창하는 도시민에 대한 양고기 공급이 매우 가치있는 사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베이크웰은 우수한 품종을 만들기 위해서, 어미와 새끼의 교배, '동종교배'를 통하여 머리는 작고 몸통은 큰 양, 즉 보다 많은 고기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의 품종을 만들었다. 이 때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양들이 마구 날뛰는데다가 미친듯이 자신들의 등과 꼬리를 긁어냈던 것이다. 원인은 알 수 없었으며, 이 병은 '스크래피'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초반의 스크래피 대재앙은 그 시작과 같은 힘에 의해서 잦아들게 되었는데, 그것은 시장의 힘이었다. 그러나, 스크래피의 원인에 대해서는 결국 알 수 없었고, 그 이후 이것이 일종의 프리온 질병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3) 쿠루병 (Kuru)
1차 대전에서 연합국 측으로 참전한 호주는 독일의 해외식민지였던 파푸아뉴기니의 통치권을 접수한다. 호주는 내륙의 원시부족들에 대한 탐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 부족들 중 하나가 포레이족이었다. 그런데 탐사대는 이들 포레이족에서 여자와 어린이의 사망률이 무척이나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의 증상은 격렬한 오한, 떨림을 동반했다. 이 병은 '쿠루병'이라고 명명되었다. 이런 가운데, 칼턴 가이듀섹이라는 명석한 학자이나 소아과 의사가 파견되었다. 그는 이 병을 접하면서, 역학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그는 쿠루병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뇌를 미국과 호주에 보내는데, 조사결과, 이들의 뇌는 크로이츠펠트-야곱병 (CJD)과 비슷한 뇌의 손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 누구도 두 병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가이듀섹은 이것이 유전병인지 전염병인지 조사했고,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쿠루병의 원인을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60년대에 파푸아뉴기니에 파견된 인류학자인 호주의 글래스 부부였다. 그들은 포레이족이 식인의 풍습을 받아들인 것이 비교적 최근인 50년 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글래스 부부는 의사가 아니었으므로, 쿠루의 원인을 밝힐 수 없었으나, 쿠루가 이들의 식인을 시작한 후에 발병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가이듀섹이 연구를 시작할 무렵에는 식인풍습이 사라져있었고, 프리온 질환이 수십년간 잠복한 후, 발병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자가면역질환의 경우, 감염증과 마찬가지로 혈액에 흔적을 남기나, 쿠루 환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가이듀섹은 동물병리학자인 월리엄 해들로의 실험을 따라, 영장류에 쿠루 환자의 조직을 주사했고, 이들 영장류는 몇 년 후, 쿠루 환자와 마찬가지인 증상을 나타내며 죽었다. 비로소, 쿠루는 유전병이 아니라 감염증이라는 증거를 잡은 것이다. 가이듀섹은 스크래피, 쿠루, CJD가 유사한 뇌손상을, 스펀지처럼 구멍이 생기는,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다. 가이듀섹은 이것을 '슬로 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 물론 바이러스라는 용어가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이 때까지, 이것이 바이러스인지 단백질인지 아무도 증명할 수 없었다.
프루시너는 1970년대 CJD환자를 보고서, 이 부분에서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고도의 스크래피 단백질 정제작업을 시작했고, '슬로 바이러스'를 '프리온'으로 명명했다. 이어 곧 그는 프리온을 아미노산 서열의 일부를 밝혀낼 수 있을 정도로 정제했는데, 이것은 숙주의 정상적인 유전자가 만들어낸 단백질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즉, 프리온은 외부로부터 희생자를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까지 프리온은 감염에 의해서 발병한다는 전제가 깨졌다. 일련의 실험을 통해서, 프리온이 프리온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즉, 감염이 아니라, 결함이 있는 유전자에서 만든 단백질에 노출되었을 뿐이다.
프리온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정상적인 형태가 본래 2가지로, 첫번째 형태는 세포내 정상적 기능이며, 두번째 형태을 취하면 프리온 질병을 일으킨다. 질병을 유발하는 프리온을 정상적인 프리온과 함께 넣으면 정상 프리온은 질병을 유발하는 프리온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쿠루같은 전염성 프리온 질환은 외부에서 유래한 변형 단백질이 환자의 정상적 단백질과 접촉해서 입체적 구조를 변형시킨다.
(4) 광우병 (우해면상뇌증, BSE /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1970년대 후반부터 영국에서는 소의 떨림과 같은 증상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뇌병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역학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존 와일드스미스 역학자가 이를 맡았다. 그는 농장주들이 소에게 먹이는 케이크에 주목했다. 케이크, 즉 고단백농축물은 다른 가축의 고기였다. 그는 최소한의 정보를 바탕으로 원인을 멋지게 밝혀냈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자국 축산업계의 이해관계로 인해서, 소극적인 대처로만 일관하게 되었다. 실질적인 대처가 이루어지기 까지 6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그 동안 오염된 고기들이 유통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희생되기 시작했고 그들의 증상은 CJD와 비슷한 증상을 나타냈다. 현재까지 영국에서는 약 150명의 희생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긴 기간 동안에 상대적으로 낮은 희생자를 기록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영국의 콜린지는 동종접합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프리온 질병에 더 취약한 것을 발견했다. 영국인들의 동종접합 비율은 매우 낮은 것이었다.
2000년 캐리 매헌의 미심쩍인 죽음 이후, 2003년 12월 다우너 한 마리가 양성반응을 나타냈다. 그 소가 6살로 동물성 사료 금지 이전에 태어나, USDA는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으나, 동종접합의 유전자 비율이 높은 일본은 즉각 미국 쇠고기 수입을 금지시켰고, 이어 40여개국이 이에 따랐다. 2005년 동물성 사료 금지 이후에 태어난 소가 BSE에 걸린 것이 발견되었다. 미국정부는 이전의 영국정부처럼 자국의 축산업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BSE에 대한 대처에 소극적인 자세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확실히 미국 쇠고기의 안전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것이다.
본서를 통해서 나는 프리온 질병이 '동종교배', '식인관습', '동종의 사료' 등과 같은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인간의 무지와 탐욕으로 시작되어 자국 축산산업에 대한 보호를 명분으로 한 국가의 무능이 더해지면서 재앙적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병원체를 규명하고 치료법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희망섞인 열정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한권의 책은 그러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고, 따라서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작금의 '미국 쇠고기'와 관련된 논쟁들은 단순히 의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검역주권, 대외자주성, 국민 건강권과 같은 정치적 요소들도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촛불집회'를 통해서 우리가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가 슬기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우리는 더이상 권위주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지 않은가.
2008.6.15.
Author D.T. Max describes himself as a journalist and an essayist.
Daniel Carleton Gajdusek (born September 9, 1923 in Yonkers, New York, USA) is an American physician and medical researcher who was the co-recipient (with Baruch S. Blumberg) of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in 1976 for work on kuru, the first prion disease ever described. A criminal conviction for child molestation marred his later life.
Stanley Ben Prusiner (born May 28, 1942) is an American neurologist and bioche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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