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사랑의 율법
Jesus, le dieu inattendu
저: 제라르 베시에르
역: 변지현
출판사: 시공사
출판일: 1997년 9월25일
중동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면,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종교에 대해서 가지는 부정적인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중동 변두리의 수많은 민족종교에 불과했던 이 종교가 어떻게 오늘날 전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을까? 너무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유대교, 기독교, 카톨릭교, 이슬람교가 사실은 같은 신을 믿는다고는 것을 생각해볼 때, 형제간의 살육이라고 해도 될까? 아니면 이제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관계가 없다고 해야 될 것인가?
오늘날 신의 이름으로 잔인한 살육을 정당화하는 IS를 보자면, 신이 이제는 우리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은 신은 이제 사라진 것일까?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을 접한 진심으로 신심 깊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자괴심에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괴로워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욕하는 사람만 넘치는 것 같다.
불가지론은 타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신념으로 무신론자가 되었다. 따라서 기적이라든지 절대자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내 자신에게도 슬픈 이야기지만 우리는 사후세계라든지 영혼이라는 것에 불멸함을 기댈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종교가 역사적으로 좋은 역할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믿음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하게 된다.
민족이 근대적 개념이라고 할 때, 유대인이라는 것이라는 범주는 아무래도 유대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한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시대에서 로마제국의 지배가 종교적 관용이 베풀어졌다면 지금의 관점과는 다른 식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 시대의 유대인은 로마지배체제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잡았다. 그리고 이를 통한 일종의 공고화된 사회구조는 기득권과 피지배층으로 나누어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시대에 예수가 나타났다. 구약의 무서운 신을 대신해서 그가 이야기를 하는 자애롭고 어쩌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인가? 유대 기득권이 만든 절대적인 의미의 제사와 믿음을 예수는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나 새로웠기 때문에 과연 같은 신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다. 깨어나라. 사랑하라. 예수의 이야기가 심금을 올리지 않는가? 나는 비록 무신론자이지만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이야기들 되새길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사랑만큼 위대한 것도 없을 것 같다. 오늘날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된 형제들이 예언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귀 기울였다면 어떨까? 그들은 예수를 죽인 유대교 사제와 다를 바가 없다.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불멸에 관하여: 죽음을 이기는 4가지 길 (0) | 2025.10.11 |
|---|---|
| 알렉산더 대왕 (0) | 2025.10.11 |
| 찰스 다윈: 진화를 말하다 (0) | 2025.10.11 |
| 인생학교: 섹스 (0) | 2025.10.11 |
| 록의 시대 : 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 (1) | 2025.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