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록의 시대 : 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
L’age du rock
저 : 알랭디스테르
역 : 성기완
출판사 : 시공사
발행일 : 1996년 11월25일
개인적으로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 따위를 좋아한 까닭에 록은 잘 모른다. 정확하게 이야기 한다면 그다지 관심이 없다. 좋아하는 음악도 한정되어 웨스 몽고메리 (Wes Montgomery) 오래된 재즈 연주곡을 듣는 것이 가장 편하다. 거래처하고 노래방이라도 가게 되면, 최신 곡은 아예 알지 못한다. 지금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빛과 소금’의 노래를 부른다. (제목에서 느꼈겠지만 기독교를 믿는 분들이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 친한 급우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헤비메탈을 좋아해서 가끔 들려주고는 했는데 내게는 시끄러운 잡음에 불과했다. 음악적 취향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내가 음악적 재능이라든지 감각이 부재하니 어쩔 것인가? 아무튼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서 짧게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을 우연히 꺼내 들었다. 알랭 디스테르의 ‘록의 시대’ – 출간은 96년이니 벌써 20년이 다 되었다.
흑인이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것도 거의 백 년이 다된 시대였지만, 1930-1940년대 미국은 여전히 차별 많은 사회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백인과 흑인이 비록 같은 공간을 점유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공동체와 문화는 개별적으로 나누어졌다. 흑인은 자신만의 표현형식을 찾아냈다. 그 원류가 저 먼 아프리카의 장단인지 어떤 것인지 나로써는 알 길이 없지만 백인의 문화와 아주 많이 달랐던 것만은 사실이다.
로큰롤의 정확한 시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익에 밝았던 연예계 거물들은 로큰롤을 잠재적 가치를 활용하고 싶어했다. 샘 필립스는 “흑인의 목소리와 감성을 지닌 백인을 찾는다면 수십억 달러는 족히 벌 것이다.”고 말했다. 이제 신화적 존재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러한 역할을 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흑인음악과 백인의 ‘컨트리’음악이 만나면서 음악적으로 더 풍성해졌다.
1950년대의 호황은 부모세대 못지 않은 소비자가 된 ‘십대’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고스펠, 리듬 앤 블루스, 컨트리 앤 웨스턴의 혼합물인 로큰롤은 50년대 말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록이 유럽에 건너가면서 수많은 록 그룹이 생겨났다. 비틀스, 롤링스톤즈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가운데 고스펠은 락의 원천으로 계속 기능했다. 1960년대 저항가요가 등장하면서, 그 범위는 정치적인 것만 아니라 영적인 부분까지 확대되었다.
60년대 로큰롤은 거대한 문화적, 정치적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록의 상업화도 급격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록은 다양한 하위 장르로 퍼져나갔다. 롤링스톤즈와 같은 장수 그룹은 여전히 정력적으로 연주하고 노래 부른다. 내 블로그의 title은 그들의 노래인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에서 가져왔다.
Alain Dister (1941–2008), formerly Alain Sicard de Sailly, was a renowned French Rock' n Roll photographer, being one of the first European photographers to join the music scene in Haight Ashbury, California, in the mid-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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