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저 : 강덕상
역: 김동수, 박수철
출판사 : 역사비평사
발행일 : 2005년 09월10일
95년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2천여 명 이상이 죽었다. 옆으로 쓰러진 고가도로의 처참한 모습은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의 강렬한 공포감을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대참사를 겪었지만 질서정연하며 질서를 지키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TV를 보시다가 “일본인들은 역시 선진국 국민이구나. 저런 아귀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저렇게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니 말이야.” 라고 감탄하셨다.
하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감탄해마지 않았던 일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오늘날 일본에서 9월1일은 ‘재해의 날’로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이 대지진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뇌리에도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이 대지진은 그러나 차마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참사가 자리잡고 있다. 많게는 1만 명에서 6,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 조선인들이 이 때 학살되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역사학자인 강덕상교수가 1975년 발간한 책이 그간 연구결과를 덧붙여 2003년에 재출간 되었고 이것을 전남대 사학과 교수인 김동수와 박동철이 번역했다. 일본은 자신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고 있고,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대학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입장을 보인다. 강덕상은 일본인 스스로가 이를 연구하여 진상을 밝히는 작업이 미진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피력하지만 한편으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 참혹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의 정세는 1919년 3.1운동의 여파 및 일본 국내의 쌀 폭등사태의 일본제국주의의 내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시기였다. 관동대지진의 여파는 매우 참혹하여, 정부의 일부 기능 및 경찰력도 충분치 못했다. 따라서 일본 관헌은 부상과 굶주림에 빠진 재해민의 폭동 그로 인한 혼란에 대해서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관헌 등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퍼트려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언비어가 불안한 일본인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조선인이 방화, 약탈, 강도행각을 벌이며 또한 식수원에 독을 탄다는 근거가 없는 유언비어였다. 치안력 부재에 시달리고 국민의 소요가 우려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의 소요라는 근거를 들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가 조직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상인 미즈노와 경시총감인 아카이케가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면서 조선민중의 투쟁을 몸소 체험하여 조선인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으며 또한 지진으로 인한 일본인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총, 죽창으로 무장한 자경단과 일본군은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잡아서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 처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이었는데, 이 살육은 며칠이나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몇 천명의 조선인이 죽었다. 하지만 치안력이 확보되고 조선인에 대한 소문이 근거 없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학살은 잦아들었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학살에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증거를 없앴으며, 일부 자경단의 실수로 둔갑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학살로 인하여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자경단의 일부가 재판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일부 징역을 산 사람도 곧 특사로 풀려났다. 하지만 이러한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죽음을 당했다. 오늘날 조선인 학살과 일본인 사회주의자의 죽음이 동일선상에서 다루어지고 있는데, 강덕상은 이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 성격과 양상도 전혀 달랐던 것이다.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면서 그들이 가진 부의 원천이란 결국 식민지의 부를 흡수해서 도약한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은 그들이 존경 받을 수 있는 국가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했다. 이제는 미국이라는 종주국을 따라 다시 세계에 무력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시대착오적 게임을 벌이고 싶은 것일까? 나는 일본이 좀 더 자기의 과거에 솔직해지고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일본인을 적대시할 까닭은 없다. 단지 나는 일본 지배 엘리트에게 놀아나는 이 순진하고 착한 일본인들이 걱정될 뿐이다. 이제 자각해서 과거를 진심으로 화해할 것을 스스로 요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姜 徳相(カン・ドクサン、강덕상、1932年2月15日 - )は韓国出身の歴史学者。慶尚南道咸陽郡生まれ。専門は朝鮮近現代史、朝鮮独立運動。在日韓人歴史資料館館長。「韓国強制併合100年共同行動」日本実行委員会共同代表。「関東大震災朝鮮人虐殺の国家責任を問う会」役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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