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정신의 오디세이: 헤겔 철학을 넘어서
저 : 이광모
출판사 : 프로네시스
발행일 : 2007년 05월21일
헤겔. 가볍게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책 표지는 왜 이렇게 발랄할까? 책 속에 감춰진 무거움을 숨기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쉽게 헤겔에 다가갈 수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말한다. ‘헤겔의 철학은 이성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자유를 찾아, 이성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오디세이의 모험이다.’ 헤겔 읽기. 이제 시작해보자.
세계사는 이성이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인 동시에 인간의 자유가 실현되는 과정이다. 헤겔은 일관되게 이성에 기초한 자유의 실현을 꿈꾸었다. 프랑스 혁명은 ‘이성의 구체적인 실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은 헤겔에게는 위대한 인간 정신의 흐름이며 세계정신의 흐름이다.
헤겔의 책, ‘정신현상학’은 이후 많은 영향을 준 책인데, 여기에서 정신(Geist)은 한 개인의 의식으로부터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으로서의 이성 그리고 한 개인을 넘어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유방식 혹은 행동방식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즉, 이성, 의식,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편 현상은 아직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신현상학은 정신이 아직 완전히 그 본래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의 자기 인식은 정신이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의 본질이 자유임을 밝히는 과정으로 의식, 문화, 이성 등 다양한 형태를 거쳐 정신으로 드러난다. 정신이 자신을 실현한다는 것은 스스로 정신적 존재로 각인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정신 이외 물질적 세계에 있는데, 헤겔은 모든 것은 의식의 내용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를 확대하면 관념론의 원리, 즉 ‘사물의 모든 의미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한에서만 주어진다’의 원리가 도출된다. 헤겔은 의식의 경험이 거치는 여정은 ‘존재의 위협을 느끼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보다 깊은 성찰과 성숙이 이루어지듯이 인간은 부정을 통해 보다 높은 차원의 긍정으로 나아간다.’
정신은 시공간의 제약을 조건으로 현실적인 것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한다. 감각적으로 확인되는 앎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으며, 감각적 확신도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보편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사물을 단순한 통일체로도 다양한 성질의 복합체로도 보지 않고 그 둘의 끊임없는 관계로 이해하는 단계를 오성이라고 한다. 사물을 이해하는 오성은 이제 사물의 본 모습을 힘 혹은 에너지로 이해한다. 이를 통해서 뉴턴의 물리학을 받아들이고 철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칸트는 사물이 우리에게 비춰지는 대로 혹은 파악하는 대로의 모습이지 그 사물 자체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헤겔은 사물간의 상호작용하는 힘의 발현과 그 힘 자체로 설명함으로써 사물을 파악하는 의식이 곧 자기를 파악하는 의식과 다르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칸트를 극복한다. 따라서 관념론은 더 이상 주관적인 사상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헤겔은 대상에 대한 고찰 속에 자시 자신을 파악하는 의식인 자기의식으로서의 자아는 세계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수많은 대상과 다른 자아와 상호연관 속에 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각기 자립적인 삶을 이끌어가는 인간들의 총체가 곧 생명이라고 했다. 헤겔은 인간을 유적존재로 간주했는데 이는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최근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명은 구체적인 욕구 혹은 욕망으로 나타난다. 욕구는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욕구는 무한하다. 그래서 헤겔은 욕구의 무한성이라고 했다. 인간의 사회란 욕구가 총족되거나 충돌하는 현장이다. 헤겔은 투쟁하는 인간들이 서로 부딪치며 사회와 국가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생사를 건 투쟁을 통해서 욕망하는 인간들은 욕망을 위해서 싸우지만, 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 즉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욕망하는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다.
헤겔에 의하면 정신이란 인륜적인 삶이며, 정신의 단계에서 고찰되는 인간이란 인간의 보편적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인간이다. 공동체적 삶과 개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분리된 것을 그는 ‘소외된 정신’이라고 불렀다. 여기에 속하는 개인의 관심과 공동체의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공공선을 행하는 것을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 일치하는 사람을 성숙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주인은 겉으로는 주인이지만 실상은 노예의 노동과 그 생산물에 종속되어 있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헤겔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사물에 의존하는 마음을 버리고 정신의 세계에서 자유를 찾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억압의 근원을 물질적 지배로 본 마르크스는 물질적인 사회구조 자체를 바꿔야 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서 헤겔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인식의 모든 대상을 객체로 만들어 이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이론을 제공하였다. 데리다는 이성적 주체는 객체를 주체로부터 의미를 부여받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위험한 정치사상과 연관되었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푸코는 ‘이성은 자신과 다른 여타의 모든 것을 타자로 규정하고 그것들을 폄하하고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이광모가 마지막에 말했듯이 ‘인간은 헤겔이 말했듯이 욕구를 가진 존재인 동시에 이성을 가진 존재이다. 인간이 욕구를 가진 존재인 한에서 앞으로도 인간의 역사 속에서는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존재할 것이다. 반면,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혼란과 갈등의 역사 속에서 변함없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이러한 희망을 가지고 이 책의 소개를 마치고자 한다.
이광모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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