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권력의 포르노그래피: 테러. 안보 그리고 거짓말

soocut28 2025. 7. 7. 09:54

권력의 포르노그래피: 테러, 안보 그리고 거짓말

저 : 로버트 쉬어 

역 : 노승영

출판사 : 책보세 

발행일 : 2009년 06월04일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로버트 쉬어가 미국의 군산 복합체와 정치인의 유착관계를 매우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핵심은 소모적인 냉전이 악의 제국 소련의 몰락으로 갑자기 사라진 후 다극화된 세계에서 미국의 권력은 절대적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제약을 받고 있으며 제국을 유지하는 고가의 최첨단 무기는 더 이상 실제로는 쓸모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우리가 민주주의 시스템의 전형으로 생각하는 미국에서조차 제대로 된 시스템이 기능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다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환경전문기자인 에르베 캄프는 미국이 핵무기를 소유하지 않은 적에게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1978년에 정해진 원칙을 파기하면서 앞으로 있을 충돌에서 소형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는데 그 폭탄은 B6-11이었다. 캄프는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특권을 보존하기 위한 과두정치로 이행하고 있어 다수에 의한 자유토론, 준법 정신, 국가나 공공기관의 권력 남용에 대한 사적 자유의 보호 등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냉전이 악의 제국 소련의 몰락으로 갑작스럽게 끝난 후,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다국적 접근방식을 선호했으며 냉전으로 구축된 영구전시체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고자 했다. 클린턴 행정부 이후 등장한 부시는 9.11 테러를 계기로 국가안보와 미국의 무차별적 대외개입을 동일시하는 집단, 네오콘에게 대통령 권한을 넘겼다. 테러와의 전쟁은 냉전을 영구적으로 대체했다. 이러한 가운데 9.11테러와 관련 없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테러집단을 지원한 적으로 변신했다. 미국이 전쟁을 벌인 상대는 실재하는 적이 아니라 군산복합체가 바라는 가상의 적이었다.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는 적을 맞아 정부는 감축하고 있는 방위비를 급격하게 늘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은 미국의 안보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이 명분이었다. 군산복합체와 정치인 (여기에는 공화당, 민주당의 구별도 무의미하며 그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것은 네오콘임에는 틀림없다.)의 부패사슬은 일상적인 것이다. 리처드 펄과 같은 인물은 내외를 가리지 않고 나섰는데 국방예산으로 늘어난 군사력은 네오콘의 경제력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러한 유착관계는 미 국방부로 하여금 필요로 하지 않는 첨단무기를 잔뜩 구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렇게 부풀어 오른 국방예산으로 인해 정작 필요한 미국의 복지 사업 예산 재원 등은 고갈되었다. 한편 테러리스트 집단과 더불어 새롭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공산국가 중국이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은 무의미한 군비경쟁을 벌이지 않는 대신,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제 중국이 보유한 미 채권은 미 정부가 군사력 유지를 위한 첨단무기를 구매할 수 있는 재원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로버트 쉬어가 말한 대로 이 게임의 피해자는 오직 미 국민뿐이다.

앞서 군산복합체와의 유착관계는 비단 공화당의 네오콘만의 문제가 아님을 잠깐 언급했다. 이른바 민주당의 신진보주의자도 매파 노릇을 하고 있다. 신진보주의자는 대부분의 대외정책에서 인권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자국이 저지른 인권침해는 문제삼지 않는다. 이렇게 공화당 네오콘 매파와 민주당의 신진보주의자는 군산복합체와 유착관계를 통한 냉전 후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했다. 쉬어는 이스라엘을 예로 이들 매파가 실제로는 기존의 동맹관계보다도 군산복합체를 위한 적을 만드는 데 더 열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군산복합체와 정치인의 유착관계를 통해 냉전 후 만들어진 신질서는 미국을 영구전시체제로 만들었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국방예산은 국내 복지예산 등을 희생하며 막대하게 지출되고 있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인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쉬어는 아이젠하워가 이러한 군산복합체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한 것을 상기시킨다. 민주주의가 오늘날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무관심은 앤디 앤드루스가 ‘어떻게 1,100만을 죽였는가?’에서 경고한 것처럼 2차 대전 이전의 나치정권의 미치광이를 만들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이성을 믿어야 되지만, 생각만 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자들의 통치를 받으며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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