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세기
On Violence
저: 한나 아렌트
출판사: 이후
출판일: 1999년 11월
그 동안 무척이나 책을 읽는 것에 인색했다. 아마도 게을러졌다고 해야겠는데, 그 중간에도 나는 읽고 싶었던 책들의 목록을 꾸준히 만들어보고는 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한나 아렌트의 '폭력의 세기'였다. 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특징 중의 하나로 계속적으로 이야기되었던 잔인함과 폭력성 (결국은 같은 의미지만)에 대해서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다. 역사를 보더라도 폭력은 인간의 천성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폭력을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나는 폭력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한 책을 원했다. 한나 아렌트의 책이 난해하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나의 생각에 있어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본서를 읽기 전에 무엇보다도 그 시대적 비경에 대해서 일정부분 인지하고 있어야 되는데, 1960년대의 시대는 이른바 '혁명의 60년대'로 이야기되는 바,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양분할 수 없다지만 단순논리로 모든 시대로 그렇게 변동되어 왔다는 점에서 특별한 점이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 시대는 다른 시기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적 요소들을 많이 내포했다. 그것은 맑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좌파운동, 핵전쟁에 대한 불안감, 급격한 과학의 발전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아마도 기존의 체제는 보다 빠른 속도로 해체를 가속화했을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폭력은 그 도구적 특징을 넘어서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는 일도 목도되었을 것이다. 저자가 이러한 상황들을 바탕으로 하여 지난 세기의 두차례의 커다란 전쟁의 경험과 합쳐져, 폭력 그 자체를 성찰하고 분석하고자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시도는 일련의 얄팍한 시도들 - 폭력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 서술 혹은 오해 - 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학생운동, 신좌파(New Left) 등의 폭력은 이른바 맑스주의와 연결되어 보이나, 맑스에게 있어서 폭력은 새로운 사회의 탄생을 예고하는 일종의 산고였다. 폭력에 대한 새로운 전도자들이 의식했든지 아닌지 맑스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다름이 아닐까? 19세기 원리에 대한 추종은 진보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는데, 사실 진보개념은 17세기부터 지식축척의 개념으로 18세기에는 인류의 교육이라는 19세기에는 더욱 확장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무제한적인 진보의 획득은 이른바 급격한 과학발전이 그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진보는 더 이상 우리가 풀어놓은 변동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만약 진보가 불가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전쟁과 혁명의 외피로 폭력만이 유일한 장애물을 조성한다 생각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되는 역사를 중단시키는 것은 단순한 행위와 구별되는 모든 행동의 기능이다.
저자는 과연 우리는 권력의 본성을 폭력 그 자체라든지 혹은 폭력수단에 의한 기초를 두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로 이해해야 되는가 그러나 이는 국가를 지배계급의 손안에 있는 억압의 도구로 보는 맑스의 판단을 의지할 경우에만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또한 권력의 본질을 유효성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권력은 사람들이 모여 제휴하고 행동할 때 생겨난 것으로 그 자체로 이미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폭력은 그 자체로 정당성은 없으며, 정당화될 뿐이다. 저자는 권력과 폭력은 대립적이며 폭력은 권력을 파괴할 수 있으나 권력을 생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특징으로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특성으로, 인간을 정치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 인간은 수많은 규칙과 제도적 장치에 얽어 버렸으며, 진보의 개념은 이러한 폭력적인 상황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아마도 폭력, 그 자체를 사유하고 분석한 책은 거의 유일하다고 보며 시간이 된다면 한번쯤 읽기를 권한다. 그것은 본서와 현재와는 많은 시간적 차이가 있지만, 나는 여전히 한나 아렌트의 담론이 유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07.8.5
Hannah Arendt (October 14, 1906 – December 4, 1975) was a German Jewish political theorist. She has often been described as a philosopher, although she always refused that label because philosophy is concerned with "man in the singular". She described herself instead as a political theorist because her work centres on the fact that "men, not Man, live on the earth and inhabit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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