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중국통일 중국분열

soocut28 2025. 5. 11. 07:58

중국통일 중국분열 中國統一.中國分裂
저: 갈검웅 葛劍雄

역: 숙사연구회 

출판사: 신서원

출판일; 1996년 

 

파주출판단지의 '보물섬'이라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헌책방이 하나 있다. 특별히 좋은 책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곳이다. 그래서 가끔 주말이면 찾아가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이리저리 찾아 본다. 그곳에서 흥미로운 책을 하나 찾으면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으니, '보물섬'이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책이 갈검웅의 '중국통일, 중국분열'이다. 신서원에서 이전에 동양사와 관련된 좋은 책을 많이 출간 했었는데, 10년도 휠씬 더 지난 지금, 보물섬에서 만나게 되니 너무 기쁜 마음이 들었다.헌 책이기 때문에 낡은 책장과 대학생이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 이리저리 밑줄을 그은 이 낡은 책에서는 여러 사람이 함께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거기에 나도 역시 하나의 흔적을 더해본다.

중국사에서 통일과 분열은 중국역사의 발전형태를 파악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주제로 설정되어 있다. 중국역사의 한 패턴으로 주기적인 농민봉기와 종교결사를 설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곧 중국의 통일과 분열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오늘날 베이징 정부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중국의 분열이다. 역사적 경험에 의해서 그들은 농민봉기와 종교결사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근래 낙후된 서구를 개발하려는 중국정부의 노력은 경제발전에 따른 극심한 빈부차에 따른 폭발적인 반정부 정서를 와해시키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역사의 반복을 경계하는 중국 정부에 한편으로는 패권주의에 빠진 중국의 역사적 딜레마를 기억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함께 했던 지난 날의 역사를 잘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어쨌든 어떠한 이유일 지라도 역사를 되돌아 보고 현재를 비춰 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중국통일의 개념은 이미 3천년간 존재했는데, 전국시대에 형성된 통일관념은 화하족으로 줄기를 삼고, 황하 중하류의 평원지역으로 중심을 삼은 일종의 폐쇄적인 관념이었다. 동한 이후 중국의 서북에서 중앙아시아까지 거주하던 민족이 대량으로 중국 내부로 이동하게 되었고, 동북의 민족 역시 차례로 황하 유역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우세를 점한 화하문화의 면저에서 이 같은 군사상의 정복자는 문화상의 피정복자로 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온 하늘 아래에,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다"라는 이야기는 2천여 년간 유행했고, '왕'은 비록 신해혁명에서 내려왔지만, 중국인의 허황된 우월감은 도리어 현실적으로 몰락해 없어지지 않았다. 만리장성은 북방 유목민족의 남방에 대한 침입과 파괴를 막아주었지만, 민족간의 교류와 융합을 제한했고, 농업과 목축업의 경계선을 고정시켰다. 농업민족과 유목민족을 동시에 통일한 정권은 만리장성이 필요 없었고, 이후에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한편 중국인은 황제와 염제를 공동조상으로 숭배한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상당부분의 사람들은 제후의 후손이고, 염황자손은 아니며, 염황자손의 지위는 새로이 고려되어야 한다. 화하족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의 하나에서 오늘날 이같이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으로 발전한 것은 조상의 위대성이나 혈통의 우량에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하게 다른 민족을 대량으로 흡수하고 각 민족의 정수를 응집했기 때문이다.

통일국가의 형성과 강역의 확대발전, 경제문화의 개발에 따라 중국의 개념은 부단히 변화되고 확대되었다. 아편전쟁 이전까지 중국은 단지 하나의 지리적 개념 또는 문화적개념에 불과했고, 정치적 개념 더욱이 국가의 대명사는 아니었다. 역사상 중국의 최대 영역으로써 기준을 잡는다면, 통일의 기간은 81년 (1759 ~ 1840)이고, 전왕조의 영역을 회복하고 중원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면, 통일의 기간은 약 1천년이다. 이 같은 결과는 중국 역사상 통일 기간이 길고, 분열이 짧다는 논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처럼 상반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원인은 통일에 대한 해석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현재적 중국민족적, 객관적 입장에서 역사시기의 정권과 그 관계를 다루어야 하고, 봉건적, 정통적, 한족적 관념에 사로 잡혀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북송시기는 송,요의 대치가 주류를 이루고 몇 개의 정권이 동시에 병존한 시기였지 통일시기는 아니었다. 통일은 응당 실질적인 것이어야 하며, 명목 상의 것이어서는 안된다. 통일에 관한 전통적인 논법 중에서 과장된 많은 부분이 제거되어야 하고, 시간과 공간 상으로 상당히 축소되어야만 역사적 사실에 비교적 부합할 것이다. 따라서 조공무역, 책봉, 기미행정에 과장을 지워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기원전 3세기말 이전을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중국의 중원지역은 무수한 소국이 점차적 합병을 거쳐 최종적으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과정이었지 분열의 과정은 아니었다. 각 정권은 그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발전과 소멸하는 과정을 가지고 있다. 청왕조가 최종적으로 통일중국을 완성하기 이전에 어떤 곳은 중앙왕조의 외곽에 존재하며, 시종 어떤 정권의 관할지역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 같은 지역은 그들 자신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독립발전의 과정이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자치 또는 분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토번과 당왕조의 우호는 두 정권 사이의 결맹이고, 토번과 당왕조의 전쟁이 나타나는 것은 두 정권 사이의 전쟁일 뿐이지 통일 또는 분열이라고 할 수 없다. 원왕조에 이르러 토번은 일부분이 되었고 이후 중앙정권에서 이탈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분열이었다.

황하유역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인구가 집중되었으며 가장 발달된 문화요람이다. 이점에서 통일이 황하유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생산력의 발전, 교통수단의 진화와 인력자원의 증가에 따라 활동과 이해의 범위가 확대되었고 그에 따라 초래된 것은 확장하고자 하는 욕구의 증가였고, 결과는 통일지역의 확대로 나타났다. 농업은 중원왕조가 의지해 살아가는 기초이고 농업으로 입국하는 것은 왕조의 기본적인 국책이었다. 중원왕조에 있어서 강역에 대한 판단은 기본적으로 농경에 적당한지 여부, 현지의 주민을 먹여살릴 수 있는지의 여부로 표준을 삼았다.  불모의 땅에서는 정식 행정구역을 설치하지 않았고, 소규모 군대를 파견, 주둔시켜 제한적인 거점 가운데에 집중시켰다. 중국 역사상 농업민족정권의 안정된 강역은 당시의 농업과 유목이 만나는 경계를 넘지 못했다. 이 정권들은 목축지역을 점령하였으나 공고화하지 못했고, 귀순한 유목민족도 농업민족으로 개조했다. 따라서 통일은 목축민족만이 달성할 수 있었다. 지리환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즉, 인류에 대한 지리환경의 제약력은 생산력의 차이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데, 통일국가의 형성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초기의 통일은 왕왕 개개의 매우 작은 기본 지리적 단위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산능력의 항샹에 따라서 지리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부단히 증가했다. 그리고 주위의 지리환경에 대한 인식범위도 부단히 확대되고, 내용도 부단히 풍부해졌기 때문에 보다 큰 범위로 확대되고, 내용도 부단히 풍부해졌기 때문에 보다 큰 범위로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두번째 통일과 분치, 분열의 요소는 매우 많은데 지리환경은 유일한 요소가 아니며, 결정적 요소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통일과 분치, 분열의 과정에서 인구가 무관한 요소는 아니었다. 진왕조 이후 인구수는 중원왕조의 영역확장에 중대한 작용을 했다. 중원왕조는 남방으로의 확대가 비록 서한 초년에 이미 기본적으로 형태를 갖춰었으나, 점과 면의 개척은 도리어 한족이주민의 점차적 남천에 의해 진행된 것이다. 다수의 지역이 농경에 적합했고 이주민들은 신속하게 정착, 번영하였고 행정체계는 비교적 안정된 기초를 갖게 되었다. 일찍히 현지민족의 부단한 반항에 봉착했더라도 영역은 대체로 안정되고 고정되었다. 그러나 북방의 상황은 남방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북방에서 군현제를 추진학 정식 행정 구역을 추진하는 것은 사민 뿐이었으나 징집이 용이하지 않았고 이주민을 안착시킬 지역이 제한되었다. 초창기의 이주금지를 경과한 후, 청정부는 거대한 인구 압력과 변경의 공고화를 이유로 개방과 장려를 묵인하는 정책을 변경했다. 최종적으로 청왕조의 이민과 개간은 중국의 판도를 확대했고, 통일 중국에 인적, 물적 기초를 제공했다.

생산방식과 경제수준도 통일과 분열의 원인이었다. 경제발전 수준의 차이로 인해 또 상호간의 제약과 의존하는 정도의 차이로 인해 내부의 통일에 대한 요구가 달라질 수 있었다. 교통이 발전하고 수송이 편리해지면 보다 용이한 지역간의 무역과 교류가 확립된다. 이 같은 관계는 지역간의 연합과  통일의 경제기초가 된다. 상품을 생산하는 수공업이 발전할 수록, 사회의 경제적 연계는 긴밀해졌고 지역간의 상호의존도가 커졌다. 상업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지역간 연계를 형성하고 전국적인 상업망으로 발전된다. 상업이 발전할 수록 정치 통일에 대한 요구 역시 절박해진다. 정치, 군사와 경제의 분포는 불일치했고, 경제발전의 불균형이라는 모순은 더욱 커졌는데, 그 중에서도 정치중심의 경제중심에 대한 의존은 더욱 명확해졌다. 종합한다면 지역간 경제발전이 불균형한 조건하에서 정치중심은 경제중심을 통제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같은 의존 관계가 클수록 정치중심과 경제중심이 소재한 지역일수록 통일이 보다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었다 .

문화성의 일치는 정권을 통일하고 공고히 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공동의 문화기조는 비교적 일치된 국민심리를 생산해내고 민족의 응집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통일왕조의 행정제도를 종합하면, 어떤 정권의 영토가 농업지구와 유목지구로 되고, 국민도 여러 민족이 있다면 특수한 행정지역을 설치하고 특수한 정책을 실시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정책은 모두 비교적 안정되었고 오랜 기간 실시되었으며 개정할 조건이 충분하면 비로소 변경했다. 제도와 문화의 동일함은 통일이라는 면에서는 유리하다.

분열시기 명목상으로는 통일되었지만 실제로는 분열, 분치되었던 시기에는 왕왕 일종의  공인되거나 강압적인 권위사상 흠정학설이 존재하지 않았고, 각종의 사상, 학설의 학파는 비교적 평등한 지위에 있었다. 국가의 분열과 외적의 침입으로 국민은 보편적으로 근심이 존재했고, 통치계급 가운데 지식인들은 구국의 길을 절박하게 찾아야 했다. 이는 곧 모든 인재와 모든 사상에 힘을 발휘할 여지를 제공했다. 또한 각 정권 각 지역 사이에 기본이익 혹은 구체적 이익상의 모순과 제도, 정책상 종종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각종의 사상학파와 그 대표인물에 대한 태도도 달라지며 객관적으로 보호우산과 도피처를 제공했다.

통일정권에서 만들어내는 부정적 요소와 사회병폐의 근원이 모두 통일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며, 통일이 가져온 평화안녕과 사회번영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제도 혹은 어떤 제도로 통일되었는지, 어느 정도 통일되었는지에 있다. 마찬가지로 분열사회 중에서 존재하는 적극적 요소 또한 분열 그 자체가 가져온 것은 아니며, 전쟁과 파괴가 조성한 것은 더욱 아니며, 오히려 구제도에 가해진 충격 또는 구제도가 솨약한 결과이며 외부세력이 중앙집권을 잠시 혹은 국부적으로 해체한 결과이다. 어느 정도 정국이 장기간 안정되면 중앙집권이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지방자치와 의회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통일은 과거의 전제집권이 가져온 폐단에서 탈피하고 역사상 분열의 대가로 취득한 활력을 얻게 해줄 것이다.

본서의 내용을 길게 요약해보았는데, 물론 책에서 시종일관 계속되는 '다민족 일국가론'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중국의 통일과 분열의 양상을 매우 다양한 시각에서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葛剑雄(1945年-),浙江湖州人,历史学家,现任复旦大学中国历史地理研究所所长、历史地理研究中心主任、教授。并任国际历史人口委员会委员、中国史学会理事、中国秦汉史研究会副会长、上海市历史学会副会长等。葛剑雄师从历史地理学家谭其骧,1983年与周振鹤一起获得博士学位,是中华人民共和国历史上的首批文科博士。他支持山东预算达300亿人民币的中华文化标志城建设的做法招致一些舆论的批评。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 늙어 가는 세계의 거시 경제를 전망하다  (0) 2025.05.11
씨앗의 자연사  (0) 2025.05.11
총, 균, 쇠  (0) 2025.05.11
나는 조선이다  (0) 2025.05.11
식객, 팔도를 간다 경기 편  (0) 202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