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

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진실이 중요한 이유
저 : 앤디 앤드루스
역 : 이은정
출판사 : 에이미팩토리
발행일 : 2012년 04월01일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의 노령인 스테판 에셸의 ‘분노하라!’라는 소책자를 읽은 기억이 난다. 인생의 황혼을 보내고 있는 이 노신사의 외침에 나는 한동안 무척이나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가 항상 진보하는 것은 아니며 퇴보와 진보를 항상 반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았다. 냉전이 끝난 이후 나는 우리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에 속해 있으며 그것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초국가적 매커니즘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던 민주주의의 온전한 존속도 어렵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역사는 인간의 유한성을 영속시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 사실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또한 거기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다. 앤디 앤드루스의 도발적 제목은 파괴적인 살육을 일으켰던 히틀러와 나치정권에 의해 공식적으로 희생된 11,283,000명을 뜻한다. 이러한 대학살과 폭압은 가까운 북한에서부터 이전 남미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예를 찾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다. 나치정권으로 돌아가서 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것일까?
1차 대전의 패배 이후, 히틀러와 나치정권은 불합리한 베르사이유 체제를 전복하고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독일국민을 이끌었다. 끔찍한 2차 대전의 광기 속에서 이들의 일부는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학살을 알고 있었지만,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치 학살의 책임자인 아이히만을 통해 평범한 사람이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그와 조력자가 이러한 불합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 죄’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냉전 이후 변화한 패러다임은 자본주의를 통한 물적 욕망을 자극하여 소비를 조장하고, 이러한 우민화 정책은 오늘날 소수의 초부유층과 기득권이 세계의 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미친 듯이 지구와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적 무관심에 빠진다면 이것을 바꿀 현실적 힘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입으로만 욕할 필요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의 뜻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책에서 인용된 플라톤의 명언으로 마무리하겠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현자들이 겪는 형벌은 바로 잘못된 자들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이다_플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