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인도는 울퉁불퉁하다 : 우리가 상상하는 인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soocut28 2025. 5. 12. 16:06

인도는 울퉁불퉁하다 : 우리가 상상하는 인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저 : 정호영

출판사: 한스컨텐츠 주식회사

발행일 : 2011년 01월

 

내일부터 다시 비가 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인가. 오늘의 날씨도 그다지 습기가 많은 불쾌한 더위의 연속인 것 같다. 이런 날에는 시원한 북카페라도 가서 책을 읽는 것 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여유 따위야 애초에 없었으니, 집에서 정호영씨의 '인도는 울퉁불퉁하다'라는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제목을 보니, 세계화의 전도사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고, 그렇고 그런 반 세계화에 대한 견해를 인도의 현실에 접목해서 만들어진 그저그런 책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첫 장을 넘기면서 그러한 나의 얄팍한 생각은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었을 때, 책제목이 정말로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지 사람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상반된 견해를 가지곤 하는 것 같다. 한겨레신문의 신윤동욱 기자처럼 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찬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마냥 편한 장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먹고 마시고 놀기는 좋다. 난 클럽은 안가지만, 어딘가 국제적인 자유로운 영혼들의 아지트에 왔다는 착각은 했거든) 내가 어떤 젊은 태국인에게 길을 물어봤을 때, 그는 친절하게 가르쳐주었지만 곧 그는 나에게 Thai Silk를 싸게 파는 곳을 안다며 한 오토바이 택시 기사에게 소개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하지만 난 여행의 일정을 미리 짜두었고 Thai Silk 따위에 관심조차 없었다. 내가 젊잖게 사양하자, 그 젊은 친구는 나에게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물론 여행지에 가서 그러한 경험들은 한번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태국이 후진국이며 모든 태국인이 그런 사람이라고 평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경험과 편견이 전해져 재생산되는 것이다. 방콕, 마닐라, 인도를 제 집 드나들 듯이 다니면서, 어설픈 찬양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간 여행'을 읽은 것이 언제더라. 군대에서 복무했을 때니까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 정호영은 우리가 이렇게 피상적으로 가지는 인도에 대한 환상부터 깨야 된다는 것을 통렬하게 말한다. 어디 류시화 뿐일까 법정 스님을 비롯하여 작가, 배낭여행객 할 거 없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 인도의 모습은 말 그대로 '도덕과 자기수양'으로 비롯된 '영혼의 나라',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이다. 그리고 결국은 현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인도인들을 찬양한다. 비록 나는 아직 한번도 인도를 가본 적도 없지만, 정호영의 지적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피상적 해석은 아마도 우리가 그들의 삶에 뛰어 들어 실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며칠 혹은 몇달의 여행을 통해서 만나는 인도의 모습이 과연 진짜 인도일까? 카스트 제도의 불합리함과 모순을 일상의 삶 속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 그런 '구도자', '도인'의 이미지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정호영은 비참한 인도 인민의 삶을 제대로 본다면, 당신들은 그렇게 한가한 소리나 할 수 있겠느냐고 소리치는 것 같다. 정신이 아무리 풍요롭더라도 먹을 빵이 없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이니까.

비베카난다 (1863-1902)는 비록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그는 '신은 오직 하나이며,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릴 뿐이다'라고 했다. . 비베카난다에게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는 이상적인 영혼이며, 인도의 구원은 그들이 잃어버린 고대 인도의 믿음과 영혼의 힘을 찾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라마크리슈나의 제자로 베다(Veda) 경전을 통해서 카스트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으며, 인간의 고귀함을 카스트가 아닌 노동에서 찾았다. 그는 '수드라'라고 표현한 달리트 즉, 노동계급을 계몽하라고 청년들에게 당부했다. 정호영은 이에 비하여 우리가 성인으로 기억하는 간디의 숨은 이면을 알려준다. (간디의 저서는 http://mkgandhi.org 에서 검색 가능하다.) 간디의 스와라지 (Swaraj) 즉, 자치는 달리트들을 노예로 하는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했다. 인도 대중이 '마하트마'에 대한 환상을 품었지만, 그는 하층 카스트에게는 폭력적 인물이었으며, 상층 카스트를 대변하는 정치 지도자의 역할만 수행했을 뿐이다. 따라서 정호영은 간디는 독립운동에 공은 있었을 지라도 카스트를 기본으로 하는 수구적 구 지배체제를 공고히한 과도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신분해방과 토지개혁은 멀어지게 되었으며 지금 현대 인도에서도 이 모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간디주의의 본질은 따라서 이런 것으로 해석해야 된다.

이러한 한계를 명백히 가지고 있던 간디에게 사람들이 느꼈을 실망이 어떤 것인지는 눈에 뻔하다. 암베드카르는 달리트 출신으로 초대 법무장관을 지낸 사람이었으며, 달리트 운동의 핵심이 되었다. 간디는 이러한 암베르카르와 달리트 운동을 독립운동보다 더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불가촉 천민의 아이를 양녀로 입양하고 하리잔(신의 아이)라 불렀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이를 모욕적으로 받아들였다. 달리트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며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를 가진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인도 헌법에서 카스트 철폐가 명문화 된 것도 암베드카르의 공이었지만, 그는 힌두교에 대해서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56년 자신을 따르는 민중과 함께 불교로 개종하기도 했던 것이다. (암베르카르의 저서는 http://www.ambedkar.org 에서 검색 가능하다.) 한편 정호영은 암베르카르 이후 달리트 운동 관련 중요한 책으로 칸차 일라이아 (Kancha Ilaiah)는  왜 나는 힌두가아닌가 (Why I Am Not a Hindu)를 소개한다. 그는 달리트들이 생산하는 계급임을 자랑스럽게 제시했으며, 브라만의 문화만이 자랑스럽고 달리트의 문화는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이 책에서 했다고 평하고 있다.

정호영은 또 IMF에서 일한 나렌드라 나자브를 예로 들어, 불가촉천민이 아니라 중층 카스트로 분류되고 있으며 자다브라는 자신이 속한 카스트의 집단적 성공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한편 비하르 주의 달리트 출신 랄루 야다브 (나자브와 같은 성이지만 지역에 따라 발음이 틀림)는 부패한 정치인으로 악명이 높다. 이렇게 하층 카스트들이 자신들의 관습, 의례, 이데올로기, 생활양식 등을 버리고 상층 카스트의 그것으로 개작하는 것을 산크리스트화라고 하는데, 이들을 크림 계층 (Creamy Layer)라고 한다. 칸차 일라이아는 이들 크림 계층을 네오크샤트리아 (Neo-Kshatriya) 계급이라고 부르며 이들을 달리트에 대한 배반자로 간주한다고 한다.

인도는 합법적으로 공산당이 지방정부의 정권을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상 인도의 좌파계열은 우파와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일단 CPI (Communist Party of India)로 불리우는 인도 공산당과 CPIM (Communist Party of Inida (Marrxist) 인도마르크스주의공산당으로 나누어지고, 한편으로는 합법적 틀에서 벗어나 무장투쟁을 벌이는 마오이스트도 있다. 하지만 마오이스트를 제외한 기타 좌파계열 정치세력은 합법적인 틀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파계열은 국민의회와 BJP (Bharatiya Janata Party) 인도인민당이 있다. 정호영은 인도가 세계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리우지만, 부정부패, 암살, 금권선거가 판치는 인도가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한다. 한편 인도에서 좌파계열에서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이 가능한 것은 토지개혁과 관련이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간디주의자들은 수구적인 폭압적 지배구조의 지속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당연히 토지개혁에는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불만의 해소가 결국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다. 정호영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공산주의의 잣대로 이들을 일률적으로 보지 말 것을 주문한다.

한편 인도의 경제성장은 눈부신 것 같다. 세계는 인도의 IT산업의 성공을 전지구적으로 진행된 세계화의 성공적 표본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즉, 인도의 IT부분은 개발자들만 칭하는 것이 아니라, 콜센터 등의 ITES (IT-enabled Service) 인력까지 포함한 것이다. ITFS-BPO 하청거래는 인도의 경제를 좌지우지 하지도 않고 영향력도 미비하다. 인도 대형 IT회사는 SI (System Intergration) 회사로서 성장한 것인데, 결국 프로젝트 자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관리를 수행했을 뿐이다. 현재 중국, 필리핀이 이 부분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전망이 밝지는 않다.

결과적으로 인도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역시 카스트에 기초한 모순적인 폭압적 지배구조의지속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호영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 현세를 받아들이며 내세를 기원한다는 역사보다는 신화에 집착하는 간디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도가 앞으로 받아 들여야 되는 미래는 간디가 아니라 비베카난다와 암베르카르의 철학에 기초한 것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카스트 철폐와 토지개혁이 이루어져야 인도의 미래는 보다 밝을 것이다. 이제 정호형이 말하는 것처럼, 인도의 피상적인 면만 보고서, 가난한 대다수의 인도인을 비가시화하지 말자. 인도의 수준높은 정신문화에 가려진 현실을 이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야 될 시간이 온 것 같다.


Ramakrishna (18 February 1836 – 16 August 1886), born Gadadhar Chattopadhyay, was a famous mystic of 19th-century India.[3] His religious school of thought led to the formation of the Ramakrishna Mission by his chief disciple, Swami Vivekananda – both were influential figures in the Bengali Renaissance as well as the Hindu renaissance during the 19th and 20th centuries. Many of his disciples and devotees believe he was an Avatar or incarnation of God. He is also referred to as "Paramahamsa" by his devotees, and as such, he is popularly known as Ramkrishna Paramhansa.

 

Swami Vivekananda (12 January 1863 – 4 July 1902), born Narendranath Dutta) was the chief disciple of the 19th-century mystic Sri Ramakrishna Paramahamsa and the founder of Ramakrishna Mission. He is considered a key figure in the introduction of Hindu philosophies of Vedanta and Yoga in the Western World, mainly in America and Europe[2] and is also credited with raising interfaith awareness, bringing Hinduism to the status of a major world religion during the end of the 19th century.[3] Vivekananda is considered to be a major force in the revival of Hinduism in modern India. He is perhaps best known for his inspiring speech beginning with "Sisters and Brothers of America", through which he introduced Hinduism at the 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 at Chicago in 1893 Swami Vivekananda was born in an aristocratic Bengali family of Calcutta on January 12, 1863. Swami's parents influenced his thinking—the father by his rational mind and the mother by her religious temperament. From his childhood, he showed an inclination towards spirituality and God realisation. While searching for a man who could directly demonstrate the reality of God, he came to Ramakrishna and became his disciple. As a guru, Ramakrishna taught him Advaita Vedanta (non-dualism) and that all religions are true, and man service was the most effective worship of God. After the death of his Guru, Vivekananda became a wandering monk, touring the Indian subcontinent and getting first-hand knowledge of India's condition. He later sailed to Chicago and represented India as a delegate in the 1893 Parliament of World Religions. An eloquent speaker, Vivekananda was invited to several forums in the United States and spoke at universities and clubs. He conducted hundreds of public and private lectures and classes, disseminating Vedanta and Yoga in America, England and a few other countries in Europe. He also established the Vedanta societies in America and England. Later, he sailed back to India and in 1897 founded the Ramakrishna Math and Ramakrishna Mission, a philanthropic and spiritual organisation.

 

Bodhisatva Bhimrao Ramji Ambedkar (14 April 1891 – 6 December 1956), also known as Babasaheb, was an Indian jurist, political leader, Buddhist activist, philosopher, thinker, anthropologist, historian, orator, prolific writer, economist, scholar, editor, revolutionary and a revivalist for Buddhism in India. He was also the Chairman of the Drafting Committee of the Indian Constitution. Born into a poor Mahar (considered an Untouchable caste) family, Ambedkar spent his whole life fighting against social discrimination, the system of Chaturvarna — the categorisation of Hindu society into four varnas — and the Hindu caste system. He converted to Buddhism and is also credited with providing a spark for the conversion of hundreds of thousands of untouchables to Theravada Buddhism. Ambedkar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Bharat Ratna, India's highest civilian award, in 1990. Overcoming numerous social and financial obstacles, Ambedkar became one of the first so-called "Outcasts" to obtain a college education in India. Eventually earning law degrees and multiple doctorates for his study and research in law,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from Columbia University and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mbedkar gained a reputation as a scholar and practiced law for a few years, later campaigning by publishing journals advocating political rights and social freedom for India's so-called untouchables. He is regarded as a Bodhisattva by some Indian Buddhists, though he never claimed to be a Bodhisatt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