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국방군 : 2차 대전과 깨끗한 독일군의 신화
독일국방군 : 2차 대전과 깨끗한 독일군의 신화
저: 볼프람 베테
역: 김승렬
출판사: 미지북스
출판일: 2011년 03월
볼프람 베테의 '독일국방군(Die Wehrmacht)'를 통해서 2차세계 대전 당시 비인류적인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 국방군이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잔인한 범죄행위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는 비도덕적인 나치 친위대와 이에 비해 프로이센-독일의 서약을 존중하는 깨끗한 독일 국방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볼프람 베테는 이러한 신화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말해준다. 19세기말 20세기초 부터 독일 내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러시아관과 유대인관이 히틀러의 인종말살 전쟁에 그대로 투영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히틀러는 자신이 강조했던 나치의 2대 축의 하나인 강력한 국방군의 광점위한 지지가 없었다면, 이러한 파괴적인 행위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대 독일의 연방군의 주축인 국방군이 시도한 깨끗한 독일군의 신화가 얼마나 잘못된 역사왜곡인지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대소련 전쟁의 배후에 상기한 바와 같이 국방군 장군들이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물든 히틀러의 계획을 수용했기 때문에 발행한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2차대전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히틀러는 이것이 응축되어 투영된 절정 그 자체였다. 권위주의적 프로이센과 독일의 역사적 특성에서 국방군 장군들은 민주주의를 취약한 정부 형태로 봤고 히틀러의 군국주의적 권위주의에 동조했다. 인종청소 혹은 인종말살전쟁의 형태로 진행된 대소련 전쟁에서 국방군 장군들의 행위는 히틀러의 명령 때문이었다는 단순화된 이유로 그 행위 동기를 밝힐 수는 없다. 우리는 왜 그들이 주도적으로 혹은 마지못해 이러한 범죄 행위를 했느냐 질문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2차 대전 휠씬 이전에 형성된 인식의 흐름을 살펴봐야 된다. 19세기 긴장감을 유발했지만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게르만 민족주의와 범슬라브주의가 어떻게 20세기 초 급변했는 지를 살펴봐야 된다. 1917년 10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독일 부르주아지에게 자신에게도 이것이 정치적 위협이었다는 것, 그리고 1916년 독일군 내에서의 '유대인 인구 조사', 1918년 패전에서 반유대주의를 여론 조작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 즉, '배후 단도설 Dolchstosslegende'를 통해서 우리는 이미 독일 사회 내에서 부정적 러시아관과 유대관이 팽배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역사가들은 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연속성을 부정하고 2차 대전 동안에 벌어진 반인류적 범죄를 나치즘의 탓으로만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종말살정책과 앞서 설명한 인식에서 일관성을 찾을 수 밖에 없다. . 이것이 결합된 독특한 인식은 '유대 볼셰비즘(Judishcer Bolshcewimus)'으로 발전했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완성한 사람이 히틀러였다. 따라서 이러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독일 국방군 장군에게 아무런 이견이나 항의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볼프람 베테는 징집병인 사병과 하급 간부에 대한 연구에도 눈을 돌렸는데, 확인된 것은 이들의 나치 체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감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파괴적인 인종청소는 꺼리낌없이 진행 되었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국방군은 해체되었으나, 곧바로 시작된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냉전으로 인해서 국방군 장군과 인원으로 독일 연방군이 재건되면서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미국의 대소련전쟁에 대한 군사사 연구를 국방군 출신의 군사부대에 맡기면서 독일 내외에서 깨끗한 국방군 이미지가 성공적으로 구축되었던 것이다. 한편 하인리히 구데리안을 비롯한 독일 국방군 장군의 회고록이 잇달아 출간되면서 국방군의 군사적 업적이 두드러지고, 연방군 내에서 국방군은 중요한 역사적 준거로 혹은 롤모델로 발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후세대가 물러난 지금 독일에서는 국방군이 파괴적인 인종 말살 전쟁에 적극적, 소극적으로 동조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깨끗한 국방군의 전설은 이제 거짓이 되었다. "국방군과 나치의 관계, 나치 정권이 국방군을 자신의 범죄적 정책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사실, 나치 범죄에 연루된 국방군 장병들의 죄책 (즉 죄책성 연류 schuldhafte Verstrickung), 이 모든 것이 한 시대의 군부로서의 국방군이 연방군의 전통이 될 수 없다"고 독일 연방군 국방부 연구 보고서는 정리했다. 한 연방군 부대의 이름이 독일군 장성에서 300여명의 유대인을 돕다 사형당한 국방군 상사 '안톤 슈미트 (Anton Schmid)'의 이름으로 개명된 것은 그러한 역사 청산의 상징이다.
역사청산의 문제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일간의 불행한 과거에 대한 정리, 베트남 전쟁에서의 한국군의 행위를 본다면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음을 알게 된다.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좀 더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합의와 존종을 이끌어내길 바랄 뿐이다.
Wolfram Wette (Born 1940 in Ludwigshafen) ) is a German historian. Wolfram Wette studied political science, history and philosophy. He received his doctorate in 1971 at the Ludwig-Maximilians-Universität München with a thesis on the theories of war of German socialists. From 1971 to 1995, he worked as a historian at the Military History Research Office (MGFA) in Freiburg im Breisgau. In 1990, he completed his habilitation at the Albert-Ludwigs-Universität Freiburg with a study on Gustav Noske. Since 1998, Wette has worked as an apl. Professor of Contemporary History at the Department of History at the University of Freiburg. He is also one of the co-founders of historical peace research. Wette is Honorary Professor of the Russian University in Lipet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