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대로 가는 길, 삼국유사

우리 고대로 가는 길 삼국유사
저: 이경덕
출판사: 아이세움
출판일: 2006년 05월
어느덧 시간이 지나다보니 내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왔다가 가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좋은 느낌의 사람도 있고,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약간의 우울함을 함께 가져다 주는 듯 보인다. 복제인간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시대이나 윤리적 문제로 이루어지지 않는 발전된 사회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사회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라는 정체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가 말한대로 인간은 서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국인이라는 내 정체성도 그런 서사에서 비롯될 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자니, 나는 그런 울적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역사학을 전공했다고 하지만, '삼국유사'를 읽어본 적이 없고 일연에 대해서는 일반인보다 더 아는 것도 없다. 하지만 서사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정체성을 생각해보니, 그것은 잊혀진 고대로부터 그 뿌리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해보게 된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되서 '나의 고전읽기' 시리즈에서 나온 쉽게 나온 삼국유사 관련 책을 손에 넣어서 읽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일연에 대한 이야기, 삼국유사의 내용, 가치에 대해서 3 부분으로 나누어서 기술하고 있는데, 내용이 비교적 쉽게 정리되어 있으므로 청소년이나 성인이 읽기에도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시대 외면 받아온 삼국유사, 그러나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가 삼국유사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지고 아껴야 된다는 생각을 또한 해본다. 우리의 역사학이 식민지라는 굴절된 시기를 거쳤다는 것을 다시 느끼고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도 그리스, 로마신화와 같은 신화의 시대가 있었음을 기억해보며,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일연은 1206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인 압량에서 태어나1289년 사망했다. 본명은 김견명이고 호는 목암, 자는 회연과 일연이었다. 그리고 죽은 뒤에 얻은 시호가 보각으로 입적한 인각사에 보각국사 탑과 비가 있다. 일연이 활동했던 시기는 무신집권기에 몽골의 침입까지 받은 혼란의 시대였다. 일연은 출가한 뒤 8년에 22세에 선불장에 합격했고 비슬산에서 수련했는데, 일연은 묘문암에서 '살아있는 세계는 줄지 않고 부처의 세계는 늘지 않는다'는 반야심경의 구절을 화두 삼아 수도에 들어갔다. 일연의 화두는 '이 세계는 누가 새롭게 만들 수도 부술 수도 없고 새로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지도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서로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236년 깨달음을 얻는다. '오늘에야 삼계가 꿈과 같음을 알았고 대지에 터럭 하나만한 장애도 없음을 보았다'라 했다. 한편 일연은 무신정권의 당대 권력자인 최이의 매형인 정안이 주도한 팔만대장경 간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후 일연은 국사로 책봉된다. 그러나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떠났으며 어머니 사후 인각사로 들어가 삼국유사를 완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는 문학, 역사, 민속, 문화 등 다양한 방면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삼국유사는 5권 2책으로 권별로 보면 왕력, 기이1, 기이2, 흥법, 탐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이 수록되어 있다. 왕력 편은 연표와 비슷하다. 왕력을 지나면 단군신화 및 여러 탄생신화가 나오는데, 일연은 중국 상고의 전설적 인물들의 탄생 기원을 조목조목 밝혀, 우리나라 삼국의 시조가 태어남이 이와 드라지 않는데 어찌 해괴하다고 여겨 누락시킬 수 있냐고 반문한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것은 몽골의 침입으로 망신창이가 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용기를 주기 위한 것이었고, 우리도 중국만큼 역사가 오래된 민족임을 단군을 통해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이다. 일연은 왕력 편을 책 머리에 두었는데, 이는 과거의 역사를 개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기이1가 기이2를 구분하는 기준은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제1은 고조선부터 삼한, 부여, 고구려와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와 연관된 기사로 엮여졌다. 기이2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왕인 문무왕부터 마지막 왕인 경순왕까지 신라 왕조에 대한 기록과 백제와 후백제 및 가락국에 관한 몇 편의 이야기를 포함해 25개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제3에는 흥법 편과 탑상 편이 있다. 흥법 편에서는 이 땅에 어떻게 불교가 전래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여섯 조목과 신라 불교 융성에 공헌한 열 분의 승려 이름이 열거된 조목으로 되어 있다. 탑상 편에는 불교 신앙의 대상인 탑, 범종, 불상, 사찰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비교적 이야기의 성격이 강하지만, 절의 내력을 기록한 사지, 금석문 등 구체적인 내용도 많이 언급된다. 의해 편은 사전적 정의는 글의 뜻풀이다. 삼국유사에서 의해는 불교 경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승려들이 현실 속에서 불교의 교리를 적용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불교의 뜻을 풀어 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신주 편은 신라 시대에 상당히 성행한 것으로 보이는 밀교 신승들의 기이한 행적과 관련된 것이다. 감통은 생각이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감통 편에서 신라 사회에 불교가 대중화되어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이끄는 고갱이로 자리 잡은 불교를 만나게 된다. 평범한 신도들이 지극한 불심으로 한결같이 도를 닦아 극락에 이르는 이야기, 의해 편에 실린 고승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덕을 높이 삼직한 승려의 질박한 이야기가 주는 감동에도 귀 기울여 볼 만 한다. 피은 편에서는 불교의 높은 경지에 올랐으나 세속을 멀리하고 은둔한 승려와 사람들의 행적을 소개한다. 삼국유사의 마지막 편목은 효선이다. 일연은 효가 불교에서도 가벼이 생각하지 않는 덕목임을 말하고 불교를 믿는 보통 사람들에게 가정 내에서 효를 행하는 것이 불교의 선을 실천하는 길과 이어져 있음을 보여 주려고 한 것 같다.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삼국유사는 유학자들의 비판을 받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묻혔다. 삼국유사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했다. 삼국유사의 가치는 무게를 더하고 있지만,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는 저자인 일연이 역사를 다루는 사관이 아니라 승려였다는 점이다. 즉, 전문성 결여다. 두 번째는 삼국유사가 신라 중심이라는 사실이다. 세 번째는 삼국유사가 볼교 중심이 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나란히 상호 보충하는 측면이 있다. 삼국사기는 옛 고사 가운데 신비스럽거나 과학적이지 않은 부분들은 삭제하거나 손질해서 실은 것이 많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에 인용되지 않은 고전들이 많이 거명되고 있고 대부분 원형대로 수록되어 있다. 상상력의 원천인 신화, 우리 문화의 원형, 고대의 아름다운 노래 향가, 이 세 가지 보물을 한꺼번에 캐 낼 수 있는 보고가 삼국유사이다. 삼국 이전의 고대로 들어가는 가장 뛰어나고 유일한 것이 삼국유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