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씨앗의 자연사

soocut28 2025. 5. 11. 08:01

씨앗의 자연사  

An Orchard Invisible : A Natural History of Seed 
저: 조나단 실버타운

출판사: 양문
출판일: 2010년 12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내가 원래부터 직장인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가치관과 그에 따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래도 메말라가는 머리 속에 휴식의 시간을 주는 것은 책인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책은 좀 생소한 부분이지만, 씨앗을 매개로 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책이다. 확실히 내 관심사에서 식물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 동안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씨앗에는 생명의 거울이 숨어있다. 씨앗식물들은 처음에 육지에서 진화했지만, 육지식물들 자체가 바다에서 시작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바다에서 육지로의 이주에 성공한 최초의 조상 한 종으로부터 이끼와 고사리류, 쇠뜨기류, 겉씨식물 (침엽수, 소철 등의 식물군)그리고 속씨식물을 포함한 모든 식물이 진화하였다. 모든 육지식물은 다세포 배아를 만들고 이것은 모체 조직안에 저장된다. 겉씨식물들은 수중 환경 중심의 섹스 시스템을 개조하여 공기환경에 맞게 재구성했다. 속씨식물은 씨방 속에 씨앗이 들어 있어 씨앗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다. 속씨식물의 배아가 영양을 얻는 방식은 많이 다르며 어떻게 보면 기이할 정도인데 이는 내배유라는 조직이 담당한다. 옥수수, 밀, 쌀 등 곡식류 낱알의 대부분이 내배유이며, 세계 식량공급의 60%를 바로 식물의 이 조직이 담당한다. 내배유는 자신의 형제를 위한 식량 공급원으로 희생되는 불임의 배아라고 볼 수 있다. 내배유는 영양을 저장하는 창고일 뿐만 아니라 엄마가 배아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씨앗은 섹스의 산물이다. 섹스의 본질은 두 개체 사이의 유전자 교환이다. 18세기 중엽에는 식물의 성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었지만 배아가 만들어지는데 있어 난자와 정자의 역할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정자는 난자가 배아를 생산하도록 자극하는 역할만 할 뿐이며 유전학적으로는 배아에 아무런 기여를 못한다는 난자론자들이 한쪽 진영을 형성했다. 정자론자들은 난자가 배아를 담아서 키우는 그릇에 불과하며 배아의 실체는 정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무성생식으로 씨앗을 만드는 것을 '아포믹시스(apomixis)'라고 부른다. 멸종 위기 식물의 군락이 무성생식에 의존하는 것은 무성생식에 성공했다기 보다는 유성생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성생식으로 만들어진 후손에게는 선조들의 폭넓은 네트워크로부터 유익한 유전자들이 축척되어 전달되지만, 무성생식 후손에게는 엄마가 가진 것만 전달된다고 본다.

성 안토니우스의 불은 맥각병이라는 곰팡이 중독으로 야생풀이나 곡식류, 특히 호밀에 기생하는 맥각균이 원인이다. 씨앗을 감염시키는 여러 가지 곰팡이 종들의 대부분은 독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안않은 것도 있다. 독성 곰팡이균이 있는데, 이 곰팡이들은 풀 내부에서 기생충처럼 일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알칼로이드를 만들어냄으로써 화학적 방어능력이 없는 숙주식물에게 자신들이 유용한 존재임을 입증한다. 식물에 친화적인 내부기생 곰팡이들은 유성생식을 포기하고 풀의 씨앗을 통해 전파가 되지만, 식물과 불화 관계에 있거나 숙주를 중성으로 만들어버리는 내부기생 곰팡이들은 유성생식을 한다. 곰팡이 뿐만 아니라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그리고 곤충들도 일생 중 중요한 시기에 자신들을 위한 교통수단 및 식량운반 수레로 씨앗을 활용한다.

식물들이 만드는 씨앗의 크기가 천차만별이다. 다른 식물들에게서는 종들 사이의 성장 형태가 다른 것은 씨앗의 크기에 차이를 가져오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주기적으로 풍작의 해에 씨앗이 많이 생산되는 것은 동물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모든 종의 나무들이 동시성으로 풍작을 맞기 때문이다. 나무가 풍작과 흉작의 해를 반복하는 이유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은 날씨 변화에 그런 방식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떡갈나무나 다른 여러 견과류 나무들은 동물을 이용해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서 자신의 후손들 중 일부를 희생하는 비용을 지출하는데 과일이 열리는 나무들은 다른 방식으로 비용을 지불한다. 즉, 씨앗을 둘러싼 과일의 형태로 지불하는데 즙이 많고 대부분이 달콤하다.

자연선택에는 목적이 없고, 자신을 미래세대에 전달하려는 잠재된 경향을 따라 맹목적으로 진행되는 메커니즘이다. 씨앗이 아주 긴 기간 동안 생존할 수 있다면 무슨 이익이 있는 것일까? 씨앗이 싹트기에는 좋은 시간과 나쁜 시간이 있다. 씨앗은 단 한 차례만 싹튀우기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이밍이 아주 잘 맞아야 한다. 씨앗은 자신이 검토 가능한 모든 신호가 성장에 가장 유리한 조건에 있을 때 싹을 틔운다. 자신의 씨앗 중 일부를 종자휴면의 형태로 보관하여 완전히 소멸될 위험을 분산시키지 않는 개별 식물들은 결국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었다. 싹트기는 씨앗이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씨앗이 부풀어 오르고 그 다음 배아가 성장한다.

아주까리 씨앗에 함유된 리신은 신체의 모든 세포들에게 단백질 생성 과정을 강력하게 방해하는데, 코브라 독보다 독성이 강하며 해독제가 없다. 씨앗이 독성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씨앗의 독성은 아직 덜 자란 자손이 동물들에게 먹히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왜 어떤 씨앗들에는 독성이 없을까? 씨앗들은 두꺼운 외피로 자신을 둘러싸거나 땅속에 묻혀서 숨는 열매들처럼 다른 방법으로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앗에는 기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이를 이용해서 연료를 만들 수 있다. 기름야자가 좋은 연료로 생각되는 이유는 에너지가 많은 기름을 만들기 때문이다. 식물기름, 동물기름, 지방은 모두 기본적 화학구조가 동일하지만 각각 저장하고 있는 에너지의 양은 다르다. 화학적으로 이들은 모두 트리아실글리세롤이다. 하지만 한 개의 트리아실글리세롤에 저장된 에너지의 양은 그 화학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크리아실글리세롤은 탄소원자로 구성된 세 개의 사슬을 기본 골격으로, 한쪽 끝이 서로 연결되어 손잡이 없는 세 날 포크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포크의 날 세 개는 지방산이며, 글리세롤 분자가 세 개의 날을 묶어 서로 연결시켜준다. 트리아실글리세롤 각 종류의 특성은 각각의 지방산 사슬을 구성하는 탄소원자의 개수 및 탄소원자가 사슬 안에서 서로 결합되어 있는 형태에 의해 결정된다. 탄소원자는 인접 탄소원자와 한 개의 화학결합(단일결합)으로 연결되거나 화학결합 두 개로 연결된다.(이중결합)

포화지방에는 지방산 사슬들이 모두 단일결합 형태의 탄소 사슬로 구성되지만, 불포화지방에서는 이중결합 형태의 탄소 사슬이 하나 이상 존재한다. 복합불포화지방에는 여러 개의 이중결합이 있다. 지방산 사슬이 길고 이중결합이 적을수록 트리아실글리세롤 분자가 서로 달라붙게 되는데 이로 인해 녹는점이 높아진다. 대표적인 예가 초콜릿으로 여기에는 포화지방이 많아서 섭씨 20도에서도 고체 상태이다. 반대로 사슬이 짧고 탄소 사슬이 이중결합이 많은 트리아실글리세롤은 녹는점이 낮다. 대표적인 예로 조리 기름은 불포화 트리아실글리세롤들을 함유한 씨앗으로 만드는 경우가 보통이므로, 섭씨 5도의 냉장고 안에서도 액체 상태로 있다. 씨앗에 함유된 기름에는 대부분 여러 가지 트리아실글리세롤이 섞여 있는데 일부는 포화지방이고 일부는 불포화지방이다. 야자기름(팜유)같은 포화트리아실글리세롤에는 불포화 트리아실글리세롤에 비해 에너지가 더 많다. 씨앗이 발아하는 기간의 날씨가 추울수록 불포화 트리아실글리세롤이 더 많은 비율로 함유되어 있다.

지금까지 씨앗에 담긴 놀랄만한 진화의 역사를 살펴보았는데, 저자의 말처럼 이를 기억하고 있다면, 앞으로 우리가 씨앗을 어떤 식으로 즐기든 더 흥미로울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Jonathan Silvertown Professor of Ecology, The Open University, 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