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천년의 왕국 신라

soocut28 2025. 5. 10. 07:58

천년의 왕국 신라
저: 김기흥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00년 04월

 

반가운 이름을 만났다. 2006년에 '고구려 건국사: 되찾은 주몽 신화의 시대'라는 책에서 만난 이후로 만 4년이 넘어서. 수많은 졸업생 중의 하나였고 그다지 눈에 들 정도로 우수한 학생도 특별한 학생도 아니었던 나를 지금은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대학시절 한국 고대사 강의를 흥미롭게 설명하시던 교수님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들이 출간한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거나 했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2000년 출간이라는 것을 보고서 생각했다. 

그 때는 내가 한창 좋다는 대학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때가 아니던가. 그렇게 보니 사회생활을 한 지 벌써 1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말도 된다. 이래저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는 것도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 초기에는 직장생활, 회사조직에 적응하기 위한 조금은 힘겨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르고, 지금처럼 익숙한 생활이 시작되면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직장을 다녔던 것 같은 이상한 착각에 빠질 정도가 되다 보니, 그제서야 역사에 더 관심이 가게 되었다. 물론 나의 수준이라는 것이 졸렬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상당히 부끄럽기는 하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수많은 역사 관련 교양서적이라는 것이 대부분 흥미 위주라던가 아니면 내용 짜집기 등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무척 당황스럽기는 했다. 어쩌면 차라리 사람들 욕을 진탕 먹었던 '조일전쟁'같은 책에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이래나 저래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양서적의 탈을 썼지만 가볍지 않은 진지한 책을 찾는 것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랬다. 내가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도 전에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말을 꺼내놓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고구려 건국사: 되찾은 주몽 신화의 시대'라는 책 자체가 그 시대를 알려주는 사료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서술됨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것더 사실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천년의 왕국, 저자가 밝힌 대로 정확하게는 박혁거세부터 시작하여 고려 태조에게 투항한 경순왕 까지 992년간 존속한 이 땅의 고대왕국 신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저자 김기흥 교수는 이 아름답고 신비한 나라를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흥미롭게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말한 대로, 신라초기부터 통일 이전의 성골왕의 시대를 중심으로 해서 서술되고 있다. 따라서 신라의 전 기간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대왕국으로써의 신라, 그래서 더욱 신라다운 기간은 바로 이 때 였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이 시대 신라는 동방의 변방국가로 같은 기간 존속한 고구려, 백제에 비하여 비교적 발전이 더디었지만, 이후 영토를 확장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극적인 발전을 이끌어 냈고, 또 한편으로는 불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를 꽃피웠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이야 말로, 3국 중 가장 발전이 늦었던 이 작은 변방국가가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신라의 사회, 정치, 문화체제의 발전과 성숙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같은 사료 뿐만이 아니라, 신라시대 금석문 및 유물을 통해서 그 이해의 폭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최근의 학술성과를 바탕으로 (물론 2000년 출간된 책이기 때문에 10여년간의 연구성과의 축적으로 우리는 최신 출간된 책을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도 있다.), 이 기간 동안의 역사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게 서술하고 있다. 지증마립간 즉, 지증왕의 후손으로 구성된 신라 중고기 왕실의 이야기, 비형랑 신화를 통한 새로운 해석이 눈에 띈다. 한편 왕실을 불교와 접목해 신성함을 강조한 진평왕에 대한 서술은 얼마전 인기리에 종영된 '선덕여왕'의 내용도 오버랩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한국 고대사, 특히 신라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