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의 역사와 문화
돈황의 역사와 문화
저: 나가사와 카즈토시
역: 민병훈
출판사: 사계절
출판일: 2010년 04월
2006년 1월 '석유의 종말'이라는 책을 처음으로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한 이후에, 내가 쓰는 200번째 책에 대한 서평이다. 처음, 블로그에 서평을 올렸던 이유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는데, 책을 읽은 후에 나 자신이 무엇을 느꼈고 깨달았는지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덤으로 얻은 것은 내 자신이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으며, 몰랐고 외면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의식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으며, 비로써 나는 책읽기와 그와 못지 않게 중요한 독후감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의 정리, 그리고 행동. 200권째 책은 그래서 나에게는 앞으로의 노정을 위한 하나의 이정표이자 출발점이다. 나의 글을 읽는 분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와 함께 또 다른 긴 여정을 함께 할 분들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황, 문명의 십자로 한 가운데 잊혀진 도시. 독일의 지리학자 리흐트 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이 '실크로드'라고 명명한 동서교역로 상에서 화려하게 탄생했고 사라진 도시. 돈황. 이전의 NHK의 다큐멘터리의 영향 때문인지, 돈황은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되어 화려하게 꽃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느낌을 언제나 나에게 주었다. 물론 일전에 소책자로 된 돈황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은 있었지만, 돈황의 역사를 자세하게 보여주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사실 이 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책 홍보를 위하여 방명록에 남겨진 글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전에 내가 쓴 '돈황'에 대한 책 서평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이 책은 나가사와 카즈토시의 원서를 바탕으로 했으며, 첫 출간은 1965년에 이루어졌다. 내용상, 현재의 실상과 다른 부분은 삭제하고 번역된 이 책에서는 역사시대 이전의 감숙으로부터 청나라 시대까지의 기나긴 돈황의 역사와 문화를 연대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다른 돈황에 대한 책이 막고굴에서 나온 고문서들의 가치 그리고 이것을 약탈해간 스타인과 펠리오 그리고 오타니 탐험대에 대한 흥미위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마치 인디에나 존스 시리즈의 한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개설서이기는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돈황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석실비고의 발견은 도교 도사인 왕원록에 의해서 우연히 이루어졌다. 돈황 고문서는 막고굴 제16굴과 제17굴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소중한 고문서들은 오브루체프, 스타인, 펠리오 탐험대 그리고 오타니 탐험대에서 의해서 차례로 국외반출이 되었다. 이들 고문서는 대체로 6 ~ 10세기 정도까지의 것이며, 한문 경정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의 고문서와 많은 이란계, 인도계의 문서를 포함하고 있는 점, 그리고 문서의 질과 양으로 보아 이제까지 없었던 동양학의 보고라는 사실, 그리고 아마도 서하의 돈황침입으로 모든 문서류가 이곳에 넣어져 봉해졌으리라는 것이다.
돈황문서는 런던에 약 1만점, 파리에 5,000 ~6,000점, 북경에 1만점, 레닌그라드에 1만점, 일본에 약 1,000점으로 총 4만 점 가까이 남아 있다. 그 중 80퍼센트는 한문문서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티베트어 문서이다. 그 외에는 산스크리트어, 소그드어, 호탄어, 구차어, 투르크어 문서 등이 있으며, 소수이기는 하지만 팔라비어, 아라비아어, 서하어, 몽골어 문서 등도 있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불교 문헌으로 북위에서 오대까지의 각종 경전을 포함하고, 그 중에서도 경저의 사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고문서 전체를 살펴보는 가운데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들 고문서가 결코 당시 사람들에게 귀중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불경이나 문서 단편도 파손된 것이 많으며 대부분은 무명의 변경 사람들에 의한 불사 관련문서, 승려의 호적, 출납대장, 불교신앙 관련 집단의 회람장 등 극히 평범한 것이어서, 소중히 보존된 문서는 아니다. 이들 문서가 남게 된 것도 문서로서 보존되었던 것이 아니라 쓸모가 없어진 이들 문서류를 이어 붙여서 그 뒷면에 불전의 주석을 달았던 것이 남은 것이며, 말하자면 승려가 사용한 노트류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돈황문서의 발견은 곧 돈황학이라는 연구분야를 탄생시켰으며, 현재도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책의 내용은 돈황문서의 발견과 그에 따른 돈황의 재조명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이후 역사시대 이전의 돈황의 역사로부터 민국시대까지의 장대한 역사의 여정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돈황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문명의 교류에 있어서 중심을 차지했던 돈황의 부침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중앙아시아 유물의 일단편도 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우리는 작은 파편이지만, 돈황에 대해서 느껴볼 기회가 있다. 하지만, 개설서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어쩌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지루한 책일 수 밖에 없다.
Wang Yuanlu (王圓籙) (c.a. 1849 1931) was a Taoist priest acting as an abbot of the caves in Dunhuang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the discoverer of the Dunhuang manuscripts. He discovered ancient Buddhist scriptures in a temple there, and, failing to appreciate their cultural value, sold them to various visitors from Europe. The first was Sir Aurel Stein, who took a largely random selection of the works. Later, Paul Pelliot would come to purchase the most valuable among them.
Paul Pelliot (May 28, 1878 –October 26, 1945) was a French sinologist and explorer of Central Asia. Initially intending to enter the foreign service, Pelliot took up the study of Chinese and became a pupil of Sylvain Levi and Edouard Chavannes. Pelliot worked at Ecole francaise d'Extreme Orient in Hanoi, from where he was dispatched in 1900 to Beijing to search for Chinese books for the Ecole's library. While there, he was caught up in the Boxer Rebellion and trapped in the siege of foreign legations. Pelliot made two forays into enemy territory during the siege - one to capture an enemy standard and another to obtain fresh fruit for those under siege. For his bravery, he received the Legion d'honneur. At age 22, Paul Pelliot returned to Hanoi, where he was made a Professor of Chinese at the Ecole. He was later elected professor at the College de France.